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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보루?용주사 정면5칸,측면 3칸의 2층누각궁궐건축과 유사. 5층석탑에는 부처님의 사리2과가 보관
ⓒ 문운주
지난 5월 31일 새벽 6시, 경기 남양주 진접의 숙소를 나섰다. 경기도 여행 셋째 날이다. 이날의 목적지는 화성의 용주사다. 이른 시간이어서 도로는 비교적 한산했다. 피곤증권사수수료비교
한 눈을 비비며 달리는 고속도로 위로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는 '사도세자', '정조', '사일 스님' 이야기가 조용히 오갔다.
남양주에서 화성 용주사까지는 약 1시간 30분 거리. 조선의 한 왕이 아버지를 위해 세운 사찰, 용주사가 그 품을 조용히 펼쳐낸다. 이 사찰은 단지 불교의 공간이 아니다. 효심,황금성배당
예술, 정치가 교차한 조선 후기의 살아있는 역사 현장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사찰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일반 사찰과는 달리, 이곳에는 신성한 곳이거나 구격(具格)이 맞는 장소임을 나타내기 위해 표지로 세우던 홍살문이 세워져 있어 이 절이 가진 특별한 위상을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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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살문?조선 마지막 원찰인 용주사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위패를 모시는 능침사찰로 경건한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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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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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행박물관?정조가 기증한 부모은중경을 비롯한 다수의 보물,문화제 전시
ⓒ 문운주
일반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이 구조물은, 사도세자와 정조의 위패를 모신 능침사찰로서 용주사의 특별한 위상을 상징한다. 불교 사찰이면서도 유교적 위계와 왕실의 장엄함을 담은 독특한 공간 구성은 용주사만의 미학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홍살문을 시작으로 삼문과 천보루를 차례로 지나게 된다. 이 일직선의 구성은 궁궐의 중축선을 연상시킨다. 중심인 대웅보전을 기준으로 좌우에 지장전·범고각, 천불전·범종각이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삼문과 그 위의 천보루를 지나면서 점점 사찰이 아니라 궁궐에 들어서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구조가 단순히 보기 좋게 지어진 게 아니라, 한 줄기 중심축을 따라 모든 전각이 정갈하게 배치돼 있다. 이곳은 단순히 기도하는 절이 아니라, 한 왕의 마음과 시대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장소다.
대웅보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지붕을 받치기 위해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사이에도 있는 다포형식으로 되어 있다. 아들 정조의 친필 현판 글씨는 단정하면서도 힘이 있다. 아버지를 위해 이 사찰을 중창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효심의 공간
▲ 에제?『기복게』는 내용을 나무에 새긴 목판본과 손으로 옮겨 쓴 필사본 2종이 전하고 있다. ？필사본인 『전적수사본(典籍手寫本)』은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음
ⓒ 문운주
용주사에서 놓쳐선 안 될 공간이 있다. 바로 '효행박물관'이다. 사찰 안에 '효'를 주제로 한 박물관이라니 낯설 수 있지만, 정조의 효심으로 세워진 능침사찰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다. 조선의 효 문화를 다룬 유물들이 전시돼 있어, 불교 사찰이자 교육 공간이라는 용주사의 독특한 면모를 보여준다.
정조가 직접 지은 <기복게(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도 전한다.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고 복을 비는 불교 게송으로, 왕이 사찰에 남긴 글이라는 점이 인상 깊다. 정조가 부처 앞에서 마음을 내려놓은 흔적처럼 느껴진다.
용주사는 정조의 깊은 효심에서 비롯된 사찰이다. 그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며 사찰을 세웠다. 그 뜻을 사일 스님이 받아 중창을 이끌었다. 정조의 효심은 사찰을 넘어 사도세자의 능역 조성과 왕권 정당화로 이어졌다. 이제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 시작점이자 중심인 융릉으로 향한다.
▲ 융릉?추존 장조와 현경황후 능
ⓒ 문운주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1776년, 25세의 나이로 즉위한 정조는 첫 교지에서 자신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했다. 이후 정조는 이 선언을 정치적 실천으로 옮겼다. 사도세자에게 '장헌세자'라는 존호를 내리고, 1789년에는 그의 무덤인 영우원을 화산(지금의 화성시)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이름 지었다.
뒤이어 1899년, 고종은 장헌세자를 '장조의황제' 로 추존하고, 무덤 역시 융릉으로 격상 황제의 예우를 갖추게 된다. 현륭원(융릉)은 정조가 효심과 이상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시작한 모든 계획의 중심이었다. 수원화성, 화성행궁, 원찰인 용주사는 모두 현륭원, 곧 오늘날의 융릉을 중심으로 계획된 대역사였다.
정문을 지나 제실과 곤선지를 거치면 능역으로 이어진다. 홍살문 너머에는 향로와 어로가 나란히 펼쳐진다. 향로는 제관이 걷는 길, 어로는 임금이 걷는 길이다. 그 끝에는 제향 공간인 정자각이 자리한다. 뒤편 경사면에는 봉분과 석물이 단정하게 배치되어 있다.
융릉은 조선 왕릉의 기본 구성을 따르고 있지만, 정자각이 봉분과 일직선을 이루지 않는 점이 독특하다. 해설사는 뒤주 속에서 8일간 고통받았던 사도세자가 사후에는 앞이 탁 트인 시야를 가지기를 바란 정조의 배려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삶이 안타까웠다.
이어서 비각에 이르니, 특별한 비석 두 기가 눈에 띈다. 하나는 정조가 직접 글을 짓고 쓴 현륭원 비, 다른 하나는 고종이 황제로 추존하며 쓴 융릉 비다. 서로 다른 시기의 글씨이지만, 두 비석 모두 사도세자를 향한 이들의 마음이 담긴 특별한 기록물이다.
융릉을 둘러본 뒤, 인근의 건릉으로 이동한다. 건릉은 정조 본인의 능으로, 아버지의 곁을 끝까지 지키고자 한 효심의 완결점처럼 느껴진다. 능역 주변에는 잘 정비된 소나무길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 역사적 여정을 마무리하며 걷기에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