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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박서연, 금준경 기자]
▲이향진 전 MBC 뉴스영상국장이 지난달 30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모습. 사진=금준경 기자.
전국 여성 영상기자들의 대모인 이향진 전 MBC 뉴스영상국장이 지난 3월31일로 정년을 맞아 퇴임했다. 이향진 전 국장은 1986년 여성 영상기자 2호로 입사했다. 앞이퓨처 주식
서 1981년 같은 회사에 여성 영상기자가 1호로 입사했지만, 3년 후 그만두면서 이향진 전 국장이 여성 영상기자들의 대모 자리를 맡아왔다.
대학교 때 사진부 활동을 계기로 영상기자의 길을 걷게 된 그는 12Kg ENG 카메라를 들고 88올림픽을 비롯해 사건·사고 현장, 문화, 과학, 경제,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인터넷백경
영상 취재를 해왔다. 또 '시사매거진 2580' 취재(5년간 78회 방송), 김현경 MBC 북한전문기자와 '여기자 평양방문 10박11일' 취재 등 뉴스 중계PD로 역사적인 사건·사고 현장을 지켜왔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이향진 전 국장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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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진 전 MBC 영상기자가 과거 MBC ENG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모습. 이향진 전 영상기자 제공.
-38년 5개월간의 근무를 마치고 지난 3월 퇴직했다.“정확히 1986년 11월15일 입사했다. 그때는 MBC, KBS만 있었다. 1988년 올림픽을 대비해서 MBC가평창올림픽관련주
당시 전체 신입사원을 115명 뽑았고, 영상 기자는 8명 뽑았는데, 여자는 딱 1명 뽑았다. 대학교 4학년 때 모집공고가 나서 신문사는 조선일보, 방송국은 MBC 이렇게 두 곳 지원했다. 졸업도 전에 MBC 영상기자로 뽑혔다.”
-영상기자 시험을 대비했었나. “대학교 2학년 말부터 노량진 고시학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다빈치게임
비했다. 그러나 언론사 모집공고를 본 거다. 친구가 1학년 겨울방학 때 집에 놀러 와서 학교 사진반 선배들이랑 양수리에 놀러 간다고 하더라. 재밌을 것 같아서 따라갔다. 사진 찍으러 가서 꽁꽁 언 양수리 강가를 걷다가 얼음이 깨져서 강에 빠졌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재밌었다. 그때부터 사진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됐고, 사진부를 하면 내가 하는 활동이 전시로 남는다는 생각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2학년 때부터 열심히 활동했다. 그때 친구와 같이 입사 지원했는데 친구는 떨어지고 나만 됐다.”
-합격 비결은. “당시 영상 담당 부국장이 88올림픽을 앞두고 여자선수촌 취재하려면 여성 영상기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동기가 8명인데 7명은 남자, 그리고 나였다. 서류전형 후 1차 필기를 보고 합격자 발표 바로 다음 날인가 카메라를 만지는 실기를 보는 거였다. 양수리에서 만났던 선배 중 한 명이 KBS 카메라 기자로 입사해 일하고 있었다. 그 선배를 카페에서 만나 ENG 카메라 그림을 그려가면서 작동법을 배웠다. 실기는 그렇게 봤다.”
-88올림픽 여성 선수촌을 취재했나. 여성 영상기자만 찍을 수 있는 현장은 어땠나.“실제 당시 여성 선수촌 취재도 했고, 여자 선수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다 들어갔다. 여성 취재기자와 저랑 팀이 돼서 취재했다. 이후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할 때 목욕탕 유세 취재도 했다. 오래전 이야기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후보가 발가벗고 들어가서 유권자들 등 밀어주는 그림을 찍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색 유세 같은 거였다. 그때는 그런 취재를 하던 시절이다.”
▲1995년 6월29일 무너진 삼풍백화점 현장을 취재하던 이향진 당시 MBC 영상기자. 사진=이향진 전 영상기자 제공.
-기억에 남는 현장이 있다면.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생존자들이 나오길 기다리며 입구에서 뻗치기(계속 기다리기)를 여러 날 했다. 매몰된 현장에서 구출되는 사람들이 언제 나올지 몰라 밤새 뻗치기했다.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사건 사고 현장을 취재할 땐 본인의 안전도 중요하다는 거다. 예전에 서울역 선로 위에서 사고가 나서 취재하러 갔는데 사고가 난 선로는 멈췄지만, 다른 선로에서 기차가 다니는 걸 망각하다 사고가 난 케이스가 있다. 그 친구는 다행히 살았고 아직 일하고 있다. 사건 사고 현장을 취재기자나 영상 기자가 좀 더 리얼하게 취재하기 위해 욕심부리다 보면 안전 문제를 등한시할 수 있다. 불나면 쫓아 들어가기도 하는데, 선배는 후배에게 현장 취재 시 퇴로를 확보하고 항상 무리하지 말라고 말해줘야 한다. 이 외에는 김현경 북한전문기자와 10박11일 평양과 개성을 취재해 6·15 1주년 특집 방송을 했던 것, '시사매거진 2580'에서 5년간 근무하며 78개 아이템을 취재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현장에서 영상기자는 어떻게 일하나. “영상기자는 사건 사고 현장에서 슬퍼할 시간이 없다. 어떤 영상을 찍을지 우선순위를 정하고, 어떤 걸 선택해서 방송에 내보낼지 빨리 판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힘든 일도 있다. 비교적 최근 있었던 사고인 이태원 참사 현장을 영상기자들이 취재하면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영상에 담은 후 회사에서 계속 다시 보면서 영상을 정리해야 했다. 취재기자들은 이 사건 사고가 일어난 원인이 무엇인지 취재에 포커스를 맞추고, 목격자나 당사자를 인터뷰한다. 반면 영상기자 같은 경우 현장 모습을 가장 리얼하게 보여줄 수 있게 취재하다 보니 현장이 너무 끔찍하더라도 지나치고 안 찍을 수 없는 거다. 그런 게 굉장히 힘들다.”
-옛날과 비교해 영상기자 업무가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유튜브를 포함해 매체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현장이 엄청 복잡해졌다. 옛날엔 매체가 3~4개밖에 안 돼서 여러 각도에서 현장을 자세히 담을 수 있었지만, 요새는 30초밖에 못 찍는다. 지금은 현장에서 옴짝달싹 못 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포지션 풀(POOL, 공동취재)을 해 공유한다. 그러다 보니 그림의 다양성도 없어졌다. 옛날에는 조용하니까 마이크도 안 댔는데, 지금은 현장이 너무 시끄러워서 오디오를 다 죽여야 할 판이다. 옛날보다 현장이 매우 복잡해져서 더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해외 출장을 가면 우리 방송국에 송출할 때 해외 방송국 가서 위성송출 시간을 잡아 정해진 시간에 송출했다. 요새는 인터넷 송출하고, MNG(Mobile News Gathering, 이동식 취재 장비)를 연결해 라이브까지 하니까 업무가 많아졌다. 인터넷 환경이 안 좋은 지역에라도 가게 되면 밤새 영상을 보내야 하는 거다. 1인 3~4역을 해야 한다. 많이 힘들어진 현장 때문에 후배들이 짠하다.”
▲ 지난 1월20일자 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서부지법 폭동 사태 때 MBC를 포함해 영상기자들이 폭행당했다. 과거에도 이런 적이 있었나.“더러 있었다. 옛날보다 매체도 국민 생각도 양극화가 심화됐다. 예전에는 그래도 매체 별 정치색이나 이런 게 별로 없을 땐 시민들이 '취재하네' '언론 활동하네' 이렇게 생각해주면서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싫어하는 매체라고 생각하면 폭력성을 나타낸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우리 매체에 대해 폭력성이 있는 곳에 가면 로고를 떼고 취재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시 제가 중계PD였는데, 그때만 해도 MBC 경영진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 다수가 친박, 친여 쪽이었다. 박 대통령이 검찰 조사 출두할 때 집 앞에서 나오는 장면을 MBC 중계차가 찍었다. 다른 방송사가 가면 박 대통령 지지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30년 전보다 나아진 점은. “다양한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 예전에는 조감 찍으려면 무조건 건물 위로 올라가야 했는데 드론 등 장비가 많아졌다. 또 요새는 예전보다 제보화면을 많이 활용한다. 카카오톡으로 실시간으로 제보가 들어온다. 예전에는 캠코더 가진 사람조차 별로 없었다. 그래서 중요한 사진이나 영상을 보내주면 시청자한테 시상하기도 했다.”
▲이향진 전 영상기자 제공.
-영상기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1988년부터 5년은 스포츠국에 있었고 올림픽을 비롯해 90 북경아시안게임 92 알베르빌동계올림픽을 취재했다. 이후 보도국으로 와서 문화, 과학, 의학 쪽을 취재했다. 사건 사고 현장만 취재하는 게 아니다. 영상기자도 어떤 분야를 취재하는지에 따라 필요한 역량이 있다. 좋은 펜으로 기사 쓴다고 좋은 기사 나오는 게 아니듯이 카메라는 도구일 뿐 아이템을 어떻게 접근할지 관점이 중요하다. 나는 키가 작은데 농구 담당을 5년 했다. 허재 선수가 한창 뛸 때다. 뉴스 마지막에 스포츠 뉴스 하이라이트 영상을 구성해 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가 다른 사람보다 키가 작지만 골대 밑에서 찍는 게 반응이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덩치 크고 체격 좋은 남자 영상기자는 그분의 관점대로 나는 내 관점대로 다르게 촬영했다. 내가 그 아이템에 얼마나 관심이 있고 열정을 갖고 했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다를 수 있다. 현장을 취재하고 보도할 때 진정성을 갖고 접근하면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있다. 하나 더 중요한 건 편견이 없어야 한다. 내가 중심을 잡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게 보도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좋은 뉴스를 만들기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케미가 좋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퇴임사에 쓴 말이다.“취재기자랑 현장에 가면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영상기자 취재기자 모두 자기가 취재하는 걸 100% 다 알 수 없다. 내가 야근할 때 임진강 인근 해군부대에서 사고가 나서 병사들이 병원에 실려 갔는데, 김포 쪽에 큰 병원이 있어 병원에 다 전화를 해봤다. 그쪽으로 왔다고 해서 취재기자를 보낸 적이 있다. 취재기자와 영상기자가 나의 일, 너의 일 가리지 말고 협업해야 한다. 서로 물어보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취재하면 안 될 것도 되게 만들 수 있다.”
▲이향진 전 영상기자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