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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 다운증후군 연극배우 백지윤, 엄마 이명희 최근 KBS ‘인간극장’이 15년 만에 한 사람의 근황을 알렸다. 대한민국 1호 다운증후군 연극배우 백지윤(33). 15년 전 강수진 같은 발레리나가 되겠다며 고군분투하던 소녀가 연극계 최고봉인 명동예술극장에 오른 것. 수줍던 소녀는 연극 ‘젤리피쉬’ 주역을 맡아 다운증후군 여성의 사랑과 성을 당당히 이야기했다. 지난 몇 년 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지윤이 직업 예술가로 우뚝 서기까지, 가족의 헌신만 있었던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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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호 다운증후군 연극배우 백지윤(오른쪽)과 어머니 이명희씨.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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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당사자가 무대에 서는 ‘무장애 연극’의 명동 입성이 장애인올림픽처럼 장애인들끼리 불굴의 인간 승리를 추구하는 이벤트는 아니었다. 장애 배우가 비장애 연극인들과 섞여 주류 연극계에 발을 디딘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윤은 곧바로 뮤지컬 ‘네버랜드’에 합류해 노래와 춤, 랩까지 소화하고 있다. 내년엔 ‘젤리피쉬’ 지방 투 바다이야기게임기 어까지 예정돼 있다니, 여느 배우 못지 않은 스케줄이다.


오세형 부장 “이제 장애인 역할은 장애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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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오세형 극장운영부장과 백지윤, 이명희씨(왼쪽부터). 김정훈 기자







‘대한민국 1호 다운증후군 연극배우’의 탄생 뒤에는 올해 10주년을 맞은 릴게임예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이 2년 전 문을 연 ‘모두예술극장’이 있다. 영국 극작가 벤 웨더릴이 쓴 ‘젤리피쉬’는 이 극장이 공들여 제작한 첫 작품. 지윤의 발굴부터 작품 개발에 줄곧 함께한 오세형 극장운영부장, 어머니 이명희씨와 함께 인터뷰에 응한 지윤은 “부장님이 내 이상형”이라며 웃었다. “무대서 2시간이나 버티는 연극을 한다는 건 쉽지 않거든요. 여기는 가족처럼 보는 분위기지만 명동은 관객도 많고 힘들었을텐데, 결국 기립박수를 받았어요. 원작자가 영국 배우보다 잘했다더군요.”(오) “부장님과 선배들이 잘 이끌어준 덕분이에요. 처음엔 이상하게 쳐다볼까봐 무서웠는데, 길에서 만난 팬이 가방도 선물해줬어요.”(백)

10년 전만 해도 지윤의 앞날은 깜깜했고, 어머니 이명희씨는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무용과를 졸업시켰는데 길이 없으니 절망감이 컸죠. 남들 직업 훈련 시킬 때 내가 무슨 미친 짓을 했나. 결국 똑같이 보호작업장 보내려고 발레를 시켰구나 싶었어요.”(이)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지윤에게 어느 날 날아든 장애인 무용단 오디션 소식은 직업 예술가로서 한줄기 빛이 보인 순간이다. “그 무렵부터 조금씩 장애예술인 일자리가 생겼죠. 몇 년 간 무용단에서 일하다 서른이 돼 몸이 안 따라줄 때 ‘젤리피쉬’를 하게 됐고요. 신체를 안 쓰면 인지도 감퇴하게 되는데, 연극의 대사 반복훈련이 인지에도 도움이 됐죠. 이제 와 돌아보니 지윤이가 해온 활동이 다 장문원 지원사업이었더군요.”(이)
배우 전환이 하루아침에 된 건 아니다. 오디션에 붙고도 부모로서 고민이 길었다. 지윤이 중도포기할 경우 뒷수습을 걱정한 것인데, 제작측은 배우 컨디션과 심리적인 문제까지 세심한 보완과 조력을 약속했다. “대사가 1700개에 소리 지르는 장면이나 야한 말도 많아서 힘들었어요. 민새롬 연출님이 손잡아 주면서 다같이 하는 공연이니 함께 버텨보자 하셨죠. 이제 저만의 팁이 생겼어요. 하던 만큼만 보여주자, 내 옆에 항상 엄마가 있고 부장님과 연출님도 있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거죠.”(백)









다운증후군 여성의 사랑에 관한 연극 ‘젤리피쉬’. [사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젤리피쉬’는 장애 배우의 성향과 태도를 다 수용해 가는 ‘포용적 예술’ 관점의 작품. 예상보다 시간과 노력은 많이 걸렸지만 비장애인 동료들 속에서 지윤은 폭풍성장했다. “가장 큰 우려가 야한 대사였어요. 그런 말들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사회복지기관에 물어보니 우리가 넘어야 할 선이라더군요. 결국 그 부분도 연습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됐어요. 연극을 시키면서 느낀 건 비장애인 속에서 장애인이 삶의 패턴과 언어 방식을 배운다는 거예요. 장애인끼리 있을 땐 큰 변화가 없었는데, 요즘 지윤이가 사는 방식이 놀랄 만큼 비장애인과 동일해졌어요. 동료들이 지지해준 덕이죠. 살면서 그런 지지와 격려를 받은 적이 있었나, 이런 세상이라면 장애가 있더라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이)

엄마로서 가슴 벅찼던 순간도 박수와 환호가 아니라 장애를 넘어서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다. “지윤이가 어릴 때 왕따를 당해서 ‘다운증후군’이란 말 자체가 트라우마였어요. 연습 때도 얼버무렸는데, 관객들 앞에서 당당히 내뱉을 때 뭔가 가슴에서 내려가더군요. 공감능력을 얻은 것도 큰 변화죠. 장애인은 경험이 부족하니 남의 감정에 무딘데, 다른 삶을 살아보면서 남의 입장을 이해한 것이 공연을 넘어 일상까지 이어졌고, 제 숨통도 트였습니다.”(이)
장문원 10주년…장애예술, 모두의 예술로 이제 지윤은 엄연한 직업 배우로서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부모님께 드라마 ‘펜트하우스’에 나오는 집을 사드리겠다는 야무진 꿈도 꾼다. “서른이 넘으니 어르신들 티격태격을 보는 게 힘들어서 이사하려고요(웃음). 가장이 됐을 때 엄마·아빠 지킬 힘도 길러야 하고요. 모두예술극장이 작품을 많이 만들어 주시면 좋겠어요.”(백)
장애인과 예술의 관계는 오랜 세월 ‘접근성’이 화두였다. 그런데 ‘활동의 지속가능성’ 이슈까지 발전한 게 장애예술의 현재다. “전에는 장애인 역할을 비장애인이 잘한다고 상을 줬다면, 이제 당사자성이 당연해졌죠. 처음 주목 받은 게 ‘젤리피쉬’고, 파급효과가 컸습니다. 진짜를 보면서 ‘우리가 장애를 전혀 몰랐구나, 저렇게 아름답고 활기찰 수 있구나’ 이야기하게 된 거죠. 이 작품도 민간 프로덕션(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과 협업이듯, 온갖 예술 분야에서 비장애 단체와 협력 사업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요.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죠.”(오)









방귀희







한편 장문원과 함께 10주년을 맞은 본격 장애예술은 터닝포인트를 맞고 있다. 현재 활동중인 장애예술가가 3만여 명에 이르고, 장애인문화예술 전문 시설인 이음센터·모두예술극장·모두미술공간 등 인프라와 세계 최초 장애예술인지원법까지 마련됐지만 서울과 수도권을 넘어 전국 확산이 필요한 시점이다. 방귀희 장문원 이사장은 저변 확대와 인식 개선을 위해 장애예술의 수월성 홍보를 과제로 꼽았다. “아직 장애예술을 아마추어나 단순 취미로 보는 분이 많고, 완전한 예술로 인정받기까지 장벽이 있다. 우린 그냥 예술을 할 뿐이니 장애예술이란 말보다 ‘모두의 예술’로 불러 달라”는 게 그의 당부다.

■ 꽃미남 수어아이돌 빅오션 “빌보드 차트인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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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원 10주년 기념행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K팝 수어 아이돌 빅오션의 축하공연. [사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11일 열린 장문원 10주년 기념식에선 많은 장애예술인이 축하 공연을 펼쳤다. 무용가 김영민, 성악가 강유경·이남현·황영택, 장애시인 이상열의 시를 노래한 비장애 합창단 젤코바까지 함께한 ‘모두의 무대’였다.

그중 세상에 없던 ‘수어 아이돌’ 빅오션의 무대는 또 다른 차원인 장애예술의 대중화까지 실현하고 있었다. 청각장애를 가진 훤칠한 꽃미남 청년 찬연·PJ·지석은 여느 아이돌 칼군무 못잖은 유니크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대표곡 ‘어텐션’을 부를 땐 쇄골을 드러내는 포인트 안무와 손가락 휘슬링 등 섹시한 컨셉트로 변신했는데, 지난해 데뷔 당시의 풋풋함을 벗어던진 ‘짐승돌’의 자태였다. “처음에는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려고 쉬운 노래를 불렀는데 점점 우리만의 정체성도 담고 있어요. 남성스럽고 멋진 컨셉트로 이미지 변신도 했고요.(웃음)”(지석) “저희도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 여정이 감사해요. 음악적으로도 많이 발전했죠. 최근 투어에서 랩을 라이브로 했는데, 팬들도 좋아하고 자신감도 붙어서 뿌듯합니다.”(PJ)

이들은 지난해 모두예술극장에서 열린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콘서트’에 참여한 인연으로 축하 공연에 나섰다. 대기실에서 만난 이들은 해맑은 눈빛과 살짝 외국인 같은 발음이 입덕 포인트였다. 인공 와우나 보청기의 도움으로 조용한 곳에선 일상적인 소통이 가능하지만, 여러 겹의 레이어가 있는 음악을 한다는 건 엄청난 도전. 2년간 하루 12시간 이상의 하드 트레이닝을 거쳐 K팝 아이돌이 됐다. 소리 대신 진동 스마트 워치, 빛 메트로놈, 서브 우퍼 등의 장치로 박자를 익히고 정확한 음정을 위해 AI 보컬도 활용하고 있다. “학생 시절 BTS의 RM 선배님이 음악 기부를 해준 덕분에 춤을 처음 배웠는데, 거울을 보며 춤을 추니 몸에서 비트가 느껴지고 행복해졌어요. 음악을 눈으로 즐길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마음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는 음악’을 슬로건 삼고 있습니다.”(지석)

빅오션은 해외에서 더 인기다. 올 들어 유럽과 미국 투어를 마쳤고, 곧 스페인 공연과 독일·스위스 팬미팅을 거쳐 파리에서 연말 콘서트까지 연다. “해외를 많이 다니는데 외국어를 잘 못하는 저희에게 팬들이 한국어나 간단한 수어로 인사해주셔서 감동했어요. 미국의 한 대학 총장님은 저희를 ‘청각장애계의 비틀즈’라고 해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찬연) “외국에선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좀 달라요. 국내선 안무가 어떻다는 식으로 디테일한 반응을 보인다면 해외팬들은 ‘So Crazy’라며 에너지 자체를 느끼죠.”(PJ)

이들은 ‘청각장애 아이돌’ 대신 ‘수어 아이돌’라는 수식어를 쓴다. 수어를 예술적으로 활용한 안무 창작에도 직접 참여한다. “수어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인 만큼, 장애보다는 표현에 초점을 맞추는 게 긍정적이잖아요. 안무뿐 아니라 저희 서사를 반영한 작사에도 다들 참여하고 있죠. 23일 나오는 신곡 ‘레디 셋 고’는 루돌프를 모티브 삼았는데,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 썰매를 힘차게 끌고 다니는 스토리로 올겨울 따뜻한 에너지를 드릴 거예요. 안무 챌린지도 만들어 놨으니 많이 참여해주세요.”(PJ)

그룹 명처럼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라는 세계관을 가진 이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 앞에서 장애와 비장애 구분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라이브 실력을 길러서 빌보드 차트인 하는 날을 꿈꾸고 있어요. 팬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반영한 노래도 합작해서 만들고 싶고요. 저희를 보면 힘이 난다는 분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도전하겠습니다.”(찬연·PJ·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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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