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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재 정점식(1917년~2009년) 화백은 대구 미술계의 큰 어른이다. 대구 추상화의 거목으로서도 그렇고, 미술교육자로서도 그렇고, 빼어난 글솜씨를 지닌 비평가로서도 틀림없이 그렇다.그러나 그의 또렷한 족적에 비해 그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미술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구를 벗어나면 더욱 '낯선이'가 된다. 극재가 타계한 지 올해로 16년째, 유족과 제자들이 극재 정점식 화백의 재조명을 위해 나섰다. 최근에 발간한 극재 화백의 선집 두 권이 신호탄이다. 이에 맞춰 본지에서 극재 정점식이 남긴 흔적들을 되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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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식 작, '밤의노래',1991. 유족 제공
◆작가 극재 정점식
어린 시절 대구 약전 골목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고모부에게서 한학과 서예를 배웠던 극재는 1936년 남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 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일본에서 서구의 다양한 흐 신입생 학자금대출 름을 접한 그는 다시 삼촌이 있던 중국 하얼빈으로 간다. 그곳에서 일본 문화학원 교수 쓰다 세이슈와 만나 자신만의 예술관에 대한 기초를 확립하게 된다.
극재가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되는 건 해방 후 대구로 돌아와서부터이다. 그러나 구상 중심의 당시 대구화단과는 결이 달랐다. 그는 비구상과 반추상의 세계를 향하고 중소기업창업자금지원 있었다. 6.25 전쟁은 그에게 전환점이 됐다. 대구에 피난을 온 미술, 문학 등 중앙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예술의 흐름을 파악하고 자신의 예술관도 더욱 확고히 하게 된다. 그리고 1953년 대구 미국문화원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대구화단에 추상미술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시발점이었다. 2년 뒤에는 예술의 자기 부정과 혁신을 선언한 대구미술가협회를 결 도고산 성하고 회장을 맡아 대구 미술계의 새로운 리더로 지역미술의 활성화를 꾀한다. 당시는 국전에 참여하지 않은 재야미술인들로 구성된 '모던아트협회'가 결성되는 등 우리나라에서도 현대미술이 빠르게 전개되던 때였다. 극재는 지역화가로서 유일하게 모던아트협회에 참여하며 1세대 현대미술가들과 함께 한국 현대미술의 길을 개척해 간다.자연스럽게 그는 대구 추상화단을 대표하 청약통장 1순위 는 작가로 자리잡게 된다.
작업을 하고 있는 극재 정점식 화백. 유족 제공
1960년대부터 극재는 계명대학교 미술교수로서 작품 활동을 병행한다. 이 시기 그는 구상과 추상,충동적?직관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오고 가면서 다양한 실험을 해 나갔다. 그리고 1983년 계명대학교에서 정년퇴임 이후, 그는 어느 때보다 왕성한 작품 활동에 몰입하며 최고의 절정기를 맞이한다. 다른 시기에 비해 작품의 양과 질에서도 성숙성과 무게 있는 내용을 보였음 물론이다. 그는 미술계에 바친 공로로 1998년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5년 이동훈미술상, 2009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했다.
◆ '천생' 미술교육자 극재 정점식
교육자로서 극재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귀국 후 선산 오상 중고를 거쳐 대구 계성중고에서 교편 생활을 하던 극재는 1964년 계명대학교 미술공예학과에 교수로 초빙된다. 한강 이남에서는 처음으로 생긴 미술대학이었다.말이 초빙이지 사실상 극재가 창설을 주도했다. 그는 유능한 교수들을 전국에서 초빙하고 교육목표와 커리큘럼 등을 짜며 기틀을 다졌다. 극재의 열정과 노력으로 계명대 미술공예학과는 이후 미술학부로 또 미술대학으로 변신과 성장을 하게 된다.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은 그의 분신과도 같았다.
계명대 대명캠퍼스에 있는 바위산. 극재가 쓴 글귀가 적혀 있다. 유족 제공
그는 제자들을 수준 높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온힘을 쏟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다양한 이론수업으로 내실을 다진 후 실기 수업을 했으며 가장 기본인 기초 실기에 중점을 두었다.그의 문하에 개성이 강하고 뛰어난 실력을 지닌 제자와 작가들이 다수 배출돼 미술분야에서 저마다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그는 늘 뿌듯해 했다. 그는 단순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만 머물지 않았다. '대구현대미술제'와, '멕시코문명전', '샘 프란시스전' 등 당시 대구에서는 접하기 힘든 전국 규모의 전시들을 유치해 지역사회에 수준 높은 작품을 소개하고,학생들에게는 견문을 넓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또 1975년부터 최초의 미술장학금인 '극재 미술 장학금'을 제정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다.아울러 후학들의 연구를 위해 자신의 작품 및 도서 등을 주저없이 자신이 평생 몸담은 대학에 기증했다.
◆ 미술비평가 극재 정점식
출중한 문장가였던 극재는 세계의 예술 흐름과 정보를 외국잡지, 화집, 책을 통해 접하면서 자신만의 예술관과 이론을 정립했다.이를 토대로 대구에 비평가가 드물던 시절, 비평의 공백을 메워주었다. 1963년부터 1970년까지 한국미술평론인회 회원이었을 만큼 미술이론에도 밝았다. 극재는 미술평론면에서 지역화단을 혼자 이끌며 젊은 세대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비평은 각 신문이나 학보, 미술잡지 외에 강연과 전시회를 앞둔 작가의 서문으로 나타났다. 또 (1968)와 같은 10여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고, 자신의 예술관을 바탕으로 4권의 에세이집을 발간했다.
정점식 작,'무제', 1986.유족 제공
올해 제 4회째 수상자를 낸 정점식미술이론상도 크게 보면 미술이론가이자 비평가였던 극재의 활동을 기리는 상이다. 작가의 이름을 딴 대다수 작가상이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데 비해 정점식미술이론상은 미술분야 기획가, 평론가,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격려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극재 정점식 화백의 유족들과 대구미술관은 지난 2022년 '정점식미술이론상'을 제정해 매년 수상자를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열린 제 4회 시상식 장면. 유족 제공
◆ 재조명하는 극재 정점식
극재가 큰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극재가 대구를 벗어나지 않은채 대구에서만 활동해 온 데에 그 단초가 있다는 게 미술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미술평론가인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정점식 화백은 한 현대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앞선 예술관을 견지하시고 모더니즘 계열의 회화를 그려 주목받았고 그만큼 한국 현대회화사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가 중앙화단에서 활동했다면 일찍이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크게 조명 받았을 것입니다." (『2004년 올해의 작가 : 정점식』 도록에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극재 정점식
재조명 작업에 나선 유족과 제자들은 우선 '대구의 변방성'을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극재를 보다 널리 알리는 일부터 찾았다. 그 시작이 정점식기념사업단 주도로 진행하는 극재의 미술 에세이 전집 출간이다. 5권 정도로 예정하고 있으며 현재 두 권을 출간한 상태다. 도록도 제작하고 평전도 출간할 계획이다. 모두 '극재 연구자'들을 위한 기초자료를 마련하는 일이다. 2차 작업은 이를 바탕으로 극재와 극재 작품에 대한 연구를 확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논문 공모는 물론 주제별 시기별 전시, 그리고 각종 세미나와 심포지엄을 열어 극재의 족적과 진가가 재대로 조명받도록 할 계획이다.
송태섭 기자 tssong@idaegu.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