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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줄 요약
서울과학고-서울대 공대, 이공계 커리어 정점서 돌연 음대생 편입: 서울대 음대 이어 美 명문 커티스까지 접수
50대에 ‘잔망’ 넘치는 지휘 스타일로 유튜브 스타로 떠올라: 각종 공연 섭외 쇄도… 유명세에 바짝 긴장 중
귀여운 곡만 하는 건 아냐… 대작 오페라 지휘 하고파: 목표는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진짜 행복해 보인다’ ‘이분 지휘하시는 것 보면 우울한 마음이 싹 사라짐’ ‘직업 만족도 3000%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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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백윤학의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과 영화 ‘알라딘’ OST 메들리 콘서트 지휘 영상을 모아 만든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다. 일명 ‘춤추는 지휘자’로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각종 토크쇼와 강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고 있는 백윤학 지휘자를 최근 문화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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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닉 지휘자로서 전국을 누비고 있는 백 지휘자는 “요즘 댓글 보느라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라고 손사래를 쳤다. 1975년생, 막 50대에 들어선 그에게 ‘잔망스럽다’는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는 지경이니 이에 대한 그의 반응도 궁금했다.
“그게 이젠 제 모습 중 하나라서 괜찮아요. 무대 위에서의 제 모습이니까요. 댓글들 보는 게 참 재양귀비게임설명
밌죠. 이분이 말하는 ‘잔망’이라는 게 대체 뭘까 고민해보기도 하고요.(웃음) 문제는 댓글 달리는 양상을 따라가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보게 된다는 점이죠.”
이날 그는 콘서트 무대 위에 오를 때 입는 턱시도와 정갈한 슈트는 내려두고 무더운 여름에 적당한 편안한 소재의 옷을 입었다. 그뿐인가, 무대 위에서의 익살스러운 모습은 핫이슈종목
내려두고 정반대의 진지하고 착 가라앉은 분위기로 나타났다.
실제로 그는 같이 일하는 단원들은 물론,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 사이에서 ‘두 얼굴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백 지휘자 스스로도 “성격이 워낙 생각이 많고 예민한 편”이라고 말한다. 즉흥적이고 대담한 퍼포먼스와 달리 평소에는 사람 사이의 일, 스쳐 지나간 한마디 말을 하나씩 원익QnC 주식
곱씹을 정도로 세심한 성격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면 남에게도 상처를 입힐 일이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 상처받지 않도록 항상 신경 써요. 한번 상처받으면 그게 나중에 어떤 약을 써도 잘 되돌려지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제가 잘 알거든요.”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스스로 상처를 입는 것도 유독 아프게 받아들이는 그는 인기를 얻고도 조심스럽다.
“최근에 책을 쓰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근데 제가 그동안 남들이 쓴 책을 수없이 읽으면서 꼼꼼하게 비판했던 게 생각나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못하겠다고 했어요. 남들에게 적용했던 기준을 이제는 저한테 적용해야 하는데, 그 정도로 완벽하게 (책 출간을) 해내지 못할까 봐 두렵거든요.”
유튜브도 그에게 가끔 고민을 안긴다. ‘춤추는 지휘자’에 대한 신선함을 반기는 댓글이 9라면, 못마땅하게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나머지 1의 시선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그저 ‘관심을 끌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근데 제가 ‘지휘는 안 하고 춤만 춘다’는 건 오해예요. 제 손짓, 동작이 음악하고 결국 다 싱크(sync)가 맞는다는 걸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그래서 더 소중하고 감사하죠.”
지휘자는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끄는 리더다. 이 때문에 리더십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지휘자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백 지휘자는 항상 잘해주다가 한 번 못 해주는 것보다, 오히려 평소 박하게 굴다가 가끔 잘해주는 게 리더로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인용술’을 거부한다. 그는 “누군가 나에게 아홉 번 잘해주고 한 번 못 해줘도 저는 아홉 번 잘해준 걸 기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마냥 잘해주면 호구로 안다고 하는데, 제가 모질게 하는 걸 못하는 성격의 사람이니 어쩔 수가 없어요.”
소란스러운 싸움보다는 조용한 ‘손절’이 그의 이별 방식이기도 하다. 상대방은 전혀 알아챌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헤어지기 전 마지막에 일부러 더 잘해주기 때문이다. 백 지휘자는 “그건 미련을 하나도 안 남기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갈등을 싫어하는 성격이란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은 또 있다. 악명 높은 대도시의 주차난은 백 지휘자가 극구 피하고 싶은 것들 중 하나다. 미국 커티스 음대 재학시절을 비롯해 11년간 미국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에 돌아와서도 차를 여태껏 한 번도 산 적이 없다고 한다. 대구 영남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어 매주 서울과 대구를 왕복하지만 KTX 아니면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주차난이 너무 심해서 차를 안 사요.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면서 음악 관련 또는 철학, 인문학 책을 읽는 게 훨씬 더 편하고 좋습니다. 오늘은 가방에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가 있네요.”
‘춤추는 지휘자’ 외에도 백 지휘자가 주목받는 이유로 그가 클래식계 ‘편입생’이라는 점, 그리고 ‘명문학교 출신’이라는 점 역시 크다. 이공계 학생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서울과학고-서울대 공대(전기공학부)로 이어지는 커리어를 대학교 4년까지 끝내며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서울대 음대(3학년)로 편입해 두 번째 서울대 졸업. 이후(군대 2년 후) 2003년 미국 명문 커티스 음대에 진학했다. 공백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사실 그가 진로를 돌연 음대로 바꾸겠다고 한 것은 ‘인생 최초의 반항’이었다. 당연히 집안 반대에 부딪힐 것을 알고 중간타협점으로 공대 지식과 음악 지식이 둘 다 있어야 하는 직업인 톤마이스터를 알아봤지만 그걸론 음악에 대한 열망이 풀리지 않을 것을 알았다.
“어머니랑 동생이 크게 상심했었죠. 부모님 두 분이 없는 살림에서 시작해서 당시 막 집도 마련하셨거든요. 그리고 첫째인 제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하니까 모든 기대를 받아서 ‘집안의 기둥’ 같은 존재였어요. 아마 동생은 오빠가 그런 기대를 뒤로하니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을 거고요.”
누구 하나 크게 그의 결정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미 시작된 열정을 꺼트릴 만한 존재도 없었다. 백 지휘자는 “아마추어인 오가 노리오 소니(SONY) 회장이 지휘자 겸 성악가로 활동하는 게 특히 감명 깊게 다가왔었다”며 “생각해보면 지휘는 지휘자 자신이 악기가 되어서 다른 연주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움직이게 하는 일이니 너무나 매력적인 일 아닌가”라고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휘자는 일흔이 넘어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직업이다. 아직 20년이 더 넘게 남았기에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물어도 이상하지 않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명작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백 지휘자가 언젠가 반드시 올리고 싶은 무대다. 그는 남들이 불러주는 연주를 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당장은 실현 불가능하더라도 준비가 되어있으려고 한다.
“저는 바그너가 좋아요. 사실 (바그너가) 좋은 인격의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음악은 다른 이야기예요. 악보는 작곡가가 남긴 분신이거든요.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철학을 예술화했달까요. 지난해 1월 1일부터 매일 30분씩 바그너 악보를 공부하고 있어요. 악보에 없는 이야기, 친구들과 가족과 나눴던 서신도 보면서 분석하고요. 그러다 보니 당시 시대를 알 수 있는 인문학도 자연스럽게 공부하고 있죠.”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하는 날까지 가장 두려운 것은 인공지능(AI)도 아닌 바로 그 자신이라고 말했다.
“AI가 지휘자를 대체할 것이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지휘자가 더 (인건비가) 싸거든요.(웃음) 다만 더 이상 내 앞에 새로운 게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더 크죠. 예술가로서 새로운 창조능력이 없는 것만큼 무서운 게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매일 공부하고 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생 원룸마다 수천만 원대 피아노를 턱턱… 美명문음대의 차원이 다른 지원
■ 커티스 음대서 경험한 미국의 음악교육
美 음악 의무교육은 초보적 수준
그러나 공부 원하면 계속 기회줘
전액장학금을 주고, 건반악기 및 지휘·작곡 전공 학생 개개인의 스튜디오(원룸)에 수천만 원대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하나씩 넣어주는 학교가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커티스 음악원(음대) 이야기다.
1924년에 설립돼 학생 수 100명대를 넘지 않는 ‘작지만 강한’ 학교는 설립자인 커티스 가문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100주년 기간(2024∼2025년)을 맞이했다.
백윤학 지휘자도 커티스 음대의 유산을 톡톡히 누렸다. 한국과 미국에서 최고의 음악교육기관을 모두 경험한 그는 “사실 미국의 의무교육과정 속 음악 교육은 한국보다 더 초보적인 수준”이라고 의외의 지점을 짚었다.
“한국은 초·중·고등학교를 나오면 거의 모든 학생이 악보를 읽을 수가 있죠. 그런데 미국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악보 못 읽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음악을 하고 싶은 학생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는 곳은 역시 미국이라고 강조한다.
미국은 학교마다 오케스트라가 있어서 활동을 원하는 학생은 언제든 문을 두드리면 된다고 한다. 또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두각을 나타낸 학생은 그 도시에서 운영되는 오케스트라로 가서 활동할 수 있고, 거기서도 잘하면 연방 차원의 오케스트라로, 계속해서 더 큰물에서 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초등학교 때 오케스트라가 가장 많고, 고등학교로 가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해 전공자 외의 일반 학생은 음악과 점차 멀어지게 되는 수순이다.
백 지휘자는 “생애 어느 단계에서든 음악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문호를 항상 넓게 열어두고 있는 건 ‘지금이 인생의 전부라고 안 보는’ 미국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며 “저 역시 늦깎이 클래식 편입생이지만 커티스에서 여러 지원을 받으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민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