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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6월 22일 스위스 취리히의 익스체인지텔레그래프 뉴스 에이전시 소속 영국 기자 월터 개럿은 한 통의 보고서를 받는다. 1942년 4월에서 1944년 4월 사이 폴란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참상을 담은 보고서는 이 기간 살해당한 유대인을 출신 국가별로 소개하는 걸로 끝을 맺는다. '폴란드인(트럭에 의한 이송) 약 30만 명, 폴란드인(기차에 의한 이송) 약 60만 명, 네덜란드인 약 10만 명, 프랑스인 15만 무료황금성게임
명...합계 약 176만5,000명.' 죽음의 수용소에서 탈출한 첫 번째 유대인, 루돌프 브르바와 알프레드 베츨러가 그곳의 참상을 증언한 '브르바-베츨러 보고서'다. "이게 특종임을 곧바로 알아본" 개럿은 다음 날 171만5,000명(실수로 5만 명 누락) 이상의 유대인이 수용소에서 살해됐다는 보도를 냈고,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대인 20만 명의 생명을 구하상승주
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신간 '아우슈비츠는 멀리 있지 않다'는 이 보고서를 쓴 잊힌 홀로코스트 생존자, 브르바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9시간짜리 다큐멘터리 '쇼아'에도 출연했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고, 브르바가 수용소를 겪었던 19세에 '쇼아'를 본 영국 저널리스트가 브르바의 사후, 그의 주변 인물과 관련손오공
자료를 오랫동안 추적했다.
맨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발터 로젠베르크(루돌프 브르바)다. 학구열이 뛰어난 그가 엘리트 학교에 입학해 동무들과 찍은 것으로 짙은 눈썹이 인상적이다. 아카넷 제공
책의 초반 절반가량은황금성게임설명
여느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는 탁월한 언어감각(슬로바키아어, 독일어, 영어 등을 구사한다)과 놀라운 기억력(수용소에 만난 수만 명의 희생자와 SS대원의 얼굴과 행동을 기억한다)을 갖고 있었고, 우연과 행운이 겹쳐 수용소 내 각종 보직을 골고루 경험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분업화된 수용소의 학살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조망할오늘추천주식
수 있었고 살아남아 탈출할 수도 있었다. 브르바가 본 수용소는 "살인 기계"이기도 했지만, 보석부터 금니까지 죽은 유대인들이 남긴 돈 되는 물품을 분류해 전장으로 보내는 경제적 역할도 했다.
책의 본격적인 재미는 그곳을 탈출한 후부터다. 국제 체포 영장이 발부된 브르바에게 보고서 작성은 목숨을 건 과업이었다. 그럼에도 그 일을 시작한 이유는 희생자들이 아우슈비츠 참상을 안다면, 그래서 그곳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는 걸 말릴 수만 있다면, 제노사이드를 막을 수 있을 거란 희망에서다. 유대인 176만 명을 실었던 열차는 헝가리 운행을 시작했고, 보고서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계 곳곳으로 전달된다. 아우슈비츠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지만, 이 과정에서 연합국 의사결정자들이 보인 무능함과 유대인 지도부의 미온적 태도에 브르바는 실망하고 분노했다. 사람들은 보고서 내용을 믿으려 하지 않고, 헝가리 유대인 지도부 핵심 인물인 뢰제 카스트너는 나치와 협상 끝에 보고서를 은폐하는 대신 유대인 1,700명의 목숨을 구하기로 결정한다.
브르바의 탈출 경로. 1944년 4월 9일 수용소를 탈출한 그는 나고 자란 남쪽 슬로바키아로 향했다. 지도도 나침반도 없던 그는 아동용 지도책에서 수집한 몇몇 지명을 머릿속에 담은 채 소와강 경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다. 아카넷 제공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나치 독일 최대 규모의 강제 수용소인 이곳은 1940년 제1수용소인 아우슈비츠, 1941년 제2수용소인 비르케나우가 개소했다. 아카넷 제공
전쟁 후 브르바의 삶은 그가 왜 잊히게 됐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체코 프라하, 이스라엘, 영국 런던, 캐나다 밴쿠버로 옮겨 다니며 과학자로서 살았던 브르바는 "경험에 굴복하는 듯 보이는" 생존자의 전형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유년기에 만났던 첫 번째 부인에게는 심한 집착과 강박을 보였지만 "아우슈비츠라는 행성의 궤도를 완전히 벗어난" 두 번째 부인을 만나자 초조함과 불안감을 누그러뜨린다. 브르바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은 홀로코스트 경험이 아니라 딸이 자살했을 때였다. 한마디로 아우슈비츠 생존자이면서도 세상이 생존자에게 기대하는 것에 순응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유대인 사회에서도 주변인으로 머문다.
나치의 유대인 노동 착취와 학살 장면의 묘사가 담긴, 500쪽에 달하는 이야기가 단숨에 읽힌다. 시종 담담하게 일대기를 전했던 저자는 브르바 주변의 반응을 담은 '후기'에 그를 향한 자신의 평가를 살짝 남겨뒀다.
목숨을 건 브르바-베츨러 보고서는 20만의 헝가리 유대인을 구했지만, 브르바는 구하지 못한 수십만의 생명을 더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저자를 만났던 "(유대인) 게오크르 클라인의 생각은 달랐다." 10대 시절 보고서를 읽었던 그는 아우슈비츠행 열차를 타지 않았고, 살아남아 "암 면역요법 연구에서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한 저명한 학자가 되었으며 이는 이내 수백만 명을 도울 수 있는 발전을 가져왔다."
조너선 프리드랜드 지음·김재경 옮김·504쪽·아카넷 발행·2만5,000원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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