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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 문화 속에는 '분노'라는 기본 정서가 깔려있다. 어째서인지 많은 이가 화난 상태다. 저마다 화를 내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PC주의다. 'PC'란 Political Correctness의 약자로, '정치적 올바름'을 뜻한다. 이는 지금까지 미국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아온 '미국, 백인, 남성' 중심주의에서 탈피해 다양한 타자와 소수자를 포용하자는 차별 철폐 운동이다. '미국, 백인, 남성'은 사회적 강자를 의미한다. PC주의는 이러한 강자가 아닌 약자, 즉 주류가 아닌 비주류를 조명한다. 이를 두고 '다양성'이라고도 표현한다.
미국에서 다양성의 가치를 주창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반사이익을 본 대표적인 나모바일바다이야기
라가 한국이다. 본래 미국은 자국 야구 리그의 결승전을 월드시리즈라고 부를 만큼 자국 중심적 사고가 강한 나라다. 미국의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상을 세계 최고 시상식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여기에 '그건 당신들만의 착각'이라며 일침을 가한 인물이 나타났다. 한국의 영화감독 봉준호다. 그는 "아카데미상은 지역 시상식에 불과하다"는 발언으로 아카데미상의 위상을 5억투자
깎아내렸다. 미국인들은 영어 영화가 아니면 안 보는데, 이에 대해 그는 "자막이라는 1인치 장벽을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과거 같았으면 미국인들은 화를 내거나 무시했을 것이다. 그들로서는 어느 아시아 감독의 발언이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 문화계 엘리트들이 환호무료바다이야기
하며 봉준호를 영웅처럼 대접했다. 《기생충》에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을 몰아주기까지 했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이 바로 PC주의 영향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미국 백인 중심주의에서 탈피하려던 참에 봉준호가 나타나 '울고 싶은데 뺨 맞아준' 셈이 된 것이다. K팝이 주목받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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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백설공주》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비난받던 디즈니, 다양성의 상징으로 떠올라
PC주의와 다양성을 이끈 열풍의 선봉에 선 것은 디즈니다. 디즈니는 지난 수십 년간 지식사회로부터 백인·남성 중심주의를 아이들에게 세뇌하는 첨병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부자아빠주식카페
. 디즈니 동화의 근저에 주류 중심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학자들에게서 제기된 이유다. 주류중심적 이데올로기가 무해해 보이는 디즈니 동화를 통해 아이들의 내면에 은밀하게 침투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엄청난 비난을 받아왔던 디즈니가 최근 들어서는 어찌 된 일인지 PC주의를 매우 적극적으로, 심지어 자해적인 수준으로까지 수용하기 시작했다. 디즈니 입장에서는 시장을 넓히기 위한 상술일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다양성의 가치를 대대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그러자 이제는 학자들이 아닌 대중이 디즈니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어찌 된 일인지 한국에서도 일부 누리꾼이 디즈니를 향해 격렬하게 화를 낸다. 미국에서는 백인이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리는 데 대한 반발로 화를 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 PC주의 수혜를 입은 나라다. 그런데도 왜 한국인이 디즈니 PC주의에 분노하는 걸까? 디즈니는 본심이 상술 때문이든, 진심 어린 반성이든 간에 자해를 하면서까지 옳은 일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 열심히 해서 아시아인들까지 조명해 달라고 격려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 누리꾼들의 분노가 시작된 건 2023년 《인어공주》 개봉 때였다. 그러던 것이 올해 라틴계 여성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백설공주》가 공개되자 더욱 거세져 극에 달했다. 백인 인구가 많은 미국에서도 당연히 비난이 쏟아졌고, 《백설공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사상 최악의 실패작이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흥행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성인은 물론 청소년조차 보기 어려울 만큼 유치하게 만들어졌다. 호감 가는 주요 캐릭터도 없다. 뮤지컬 형식임에도 인상적인 노래조차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작품의 핵심인 백설공주 역을 맡은 레이첼 지글러는 오히려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됐다. 지글러가 클로즈업될 때마다 관객들은 '저 사람이 백설공주에 어울리나?'라는 의문을 품게 됐기 때문이다.
흑인 여성을 공주로 캐스팅한 영화 《인어공주(2023)》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흥행은 결국 예쁜 얼굴이 만든다?
《인어공주》 개봉 당시에는 "왜 인어공주 역에 흑인이 나오느냐"며 사람들이 분개했다. 이에 대해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이번에는 "인어공주가 안 예쁜 게 문제다"라는 논리로 방향을 틀었다. 《백설공주》 역시 처음에는 주인공이 피부색이 짙은 라틴계라고 비판했다가, 이후에는 "안 예뻐서 문제"라는 논리가 다시 반복된다. 인종차별은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끼면서도, 외모 차별은 정당하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그래서 "안 예쁘다"는 말이 공격의 명분으로 내세워지는 게 아닐까.
뛰어난 외모의 인물을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래서 자본은 뛰어난 외모의 배우를 앞세워 흥행수익을 올린다. 앞서 디즈니가 자해적인 선택을 했다고 했는데, 그건 대중이 '외모가 뛰어나지 않다'고 공분하는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흥행 실패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PC주의가 반영된 디즈니 드라마 《아이언하트》 ⓒDisney+
오랜 기간 흥행사업을 해온 디즈니가 대중이 선호하는 외모 기준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대중 정서에 반하는 자해적 캐스팅을 감행한 것에 대해서는 비난보단 격려가 필요하다. 그래야 대중문화계의 외모 차별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지 않겠는가.
지나치게 많은 비난과 흥행 실패로 인해 디즈니가 다시 과거의 주류 중심주의로 회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 결코 반가운 변화는 아닐 것이다. 지금 일부 누리꾼은 PC주의 때문에 캐릭터들이 못생겨졌다고 공분하는데, 그런 원성이 커질수록 디즈니는 더 빠르게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분노하는 누리꾼들은 원작 훼손을 문제 삼기도 한다. 인종이나 외모를 떠나, 원작 자체를 왜곡했다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원작은 언제든 재해석될 수 있는 영역이다. 대중문화산업이 다양한 외모와 인종을 내세우는 방향으로 원작을 새롭게 해석한다면, 그건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건 단순한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이가 '좋고 싫음'과 '옳고 그름'을 동일시한다. 보기 싫으니 나쁘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 둘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보기 싫다고 느끼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한 가치일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 다양한 인종과 외모를 앞세우는 시도가 대표적인 예다. 이런 시도를 통해 비주류 인종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외모에 대한 편견도 줄어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공동선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PC주의를 과도하게 내세우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몸놀림이 약해 보이는 특정 여성의 액션을 내세우는 듯한 설정은 액션영화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PC주의에 앞서 작품의 완성도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당위와 예술적 완성도 사이에서 적절한 접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관객 입장에서는 '좋고 싫음'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작품이 보기 싫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한 노력의 사회적 의의만큼은 인정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소한 한국인이 인어공주, 백설공주가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분노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