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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전북 김제 만경교회 순교기념관 외부 광장에 설치된 ‘생명의 나무’(Albero dela vita). 사진작가 박우정 제공
2025년 4월부터 7월 금융감독 까지, 프랑스 파리 중심지의 유명 광장과 가로에는 다소 낯선 전시가 열렸다. “엘랑 비탈, 보이지 않은 것이 모습을 드러내다”라고 명명된 야외 조각 전시로, 이탈리아 조각 거장 안드레아 로지의 청동 조각들이 파리지앵들에게 무료로 공개된 것이다. ‘엘랑 비탈’(Elan Vital)은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제시한 개념으로, 생명이 지닌 근원적이고 능동적인 힘 롯데캐피탈 대출 을 뜻한다. 흔히 ‘삶의 약동’ 혹은 ‘생의 비약’으로 번역되는 이 말은 단순한 미학적 레토릭이 아니라 이번 전시의 숨겨진 뜻이기도 했다. 파리시가 겉으로 내세운 전시 동기는 최근 국제적 주목을 받은 거장의 작품을 시민과 공유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작가 중에 평생을 치유와 화해라는 사회적 주제에 몰두해온 그의 작품이었던 것은 경제 침체와 정치 위기 요넥스 , 사회 갈등에 지친 시민들에게 거장의 조각이 잠시나마 위로 되기를 바랐던 숨은 뜻이 있었다. 굳이 삐딱하게 보자면, 일종의 ‘파리식’ 문화복지정책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오래전부터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그의 작품을 접해봤지만, 내가 안드레아 로지를 직접 만난 것은 그가 특별명예 작가로 초청된 2019년 피렌체 국제현대미술비엔날레였다. 전시 부산학자금대출 장 야외광장을 장식한 그의 올리브나무 조각들은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듯 가볍고 살아 있는 생명체 같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이 단순한 예술적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눈치챘다. 그 조각 속에 깃든 묵직한 은유의 메시지는 상처받은 누군가를 향한 그의 처절한 시적 헌사임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행사장에서 인사를 나눈 그는 수 코란도스포츠 줍은 미소를 간직한, 맑은 눈빛을 지닌 소년 같았다. 환영 칵테일 덕분에 약간의 낯가림이 사라졌을 때, 나는 왜 평생 비슷한 주제에 집착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그것이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라 답했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기에 예술가란 당연한 사실도 잊은 나의 우문에 대한 그의 현답이었다. 한국만큼이나 전쟁, 내란, 학살, 테러를 숱하게 겪은 이탈리아의 현대사를 그 역시 살아 냈고, 그는 작품을 통해 살아남은 동시대인을 보듬어왔다.
프랑스 파리 바레 광장에 전시된 안드레아 로지의 대표작 ‘생명력(Fecunditas), 2019’. 필자 제공
그를 세계적인 거장으로 만든 대표작은 ‘생명의 나무’ 연작이다. 그의 토스카나 작업실을 둘러싼 올리브나무와 사이프러스에서 영감을 얻은 조각들은 인간과 식물의 형상이 서로 얽혀 하나의 유기적 형태로 드러난다. 몸은 동시에 뿌리내리고 솟아오르며, 현실성과 시적 상상력이 교차하는 마법 같은 리얼리즘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의 조각은 단순한 인체 묘사를 넘어 보편적 원형과 상징을 구체화하며, 삶과 우주, 시간에 대한 사유를 청동 속에 새겨 넣는다. 청동이라는 재료 자체가 만물이 시간을 관통하며 겪는 변형과 흔적을 상징하기에 그 의미는 더 깊어진다. 그래서 나는 그의 조각이 장식적 조형물이 아니라 일종의 ‘조각된 명상’이라 생각한다. 그 속에서 알레고리와 집단적 경험은 하나로 합쳐지고, 예술은 여전히 우리를 서로 연결하고 있는 숨은 힘을 드러낸다.
작년 초, 전시 때문에 파리에 들른 그를 반갑게 다시 만났다. 때마침 나는 한국에서 의뢰받은 한 건물의 설계로 마음이 무거워 있던 때였다. 전북 김제의 한 시골 교회가 설계 의뢰한 이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 퇴각 과정에서 목사와 장로, 가족 등 교인 15명이 희생된 사건을 기리는 추모의 공간이다. 유가족과 신도들의 노력으로 2009년에 겨우 순교기념비가 세워졌고, 201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만경교회는 한국기독교 순교사적지 제2호로 지정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남침한 북한 인민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천주교인 900여명을 학살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70년이 넘은 2022년에서였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한국전쟁 전후 기독교 탄압과 학살 연구조사’를 통해 이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정부의 공식 확인과 순교지 지정을 계기로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관 건립 필요성이 대두했고, 지자체의 지원 결정으로 사건 발생 73년 만에야 순교기념관 건립이 결정됐다. 이렇게 희생자는 순교자로, 추모기념관은 순교기념관으로 공식화되었다.
그러나 내 고민은 순교자들을 추모하는 건축 자체가 아니었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전쟁이 끝난 후 왜 이렇게 오랫동안 사건이 묻혀 있었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과거 자료를 뒤적이다 마주하게 된 진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먹먹함 그 자체였다. 교회를 위해 산화한 이들과 그 가족들의 비극 너머로, 한국 근현대사의 숨겨지고 잊힌 실체가 똬리 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누적된 지주와 소작농의 계층 갈등, 전쟁이 불러온 이념의 편입, 공산군의 퇴각에 궁지에 몰린 좌익의 폭주와 국토 수복 뒤 이어진 우익의 복수,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원한과 반목, 그 상처가 강제한 대를 이은 침묵…. 오늘 우리가 ‘좌우 갈등’이라 부르는 골의 숨은 뿌리는,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었던 그 어지러운 역사 어딘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설계 의뢰는 순교자들을 기리는 추모 공간이었으나 그 추모의 대상을 어디까지로 한정할 것인가는, 세상을 한쪽 눈으로 볼 것인가 두 눈으로 볼 것인가에 비견될 만큼 본질적인 문제였다. 하나의 건축물에 그 역사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로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스케치북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쓱 그린 크로키 한장을 내게 내밀었다. 한 뿌리를 나눈, 서로 고통스럽게 껴안은 두 남녀, 그 손끝에서 피어나는 올리브 잎과 열매. 그리고 그 그림 위에 꾹 눌러 쓴 단어, 생명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비타’(vita). 순간 나는 욱하고 쏟아질 뻔한 눈물을 참느라 시선을 돌려야 했다. 단순한 선묘 속에 갈등과 고통, 연민과 그를 넘어선 희망을 동시에 눌러 담은 그 단순한 단어, 생명….
폭탄 테러가 있었던 이탈리아 피렌체 조르조필리 거리에 설치된 ‘평화의 나무(Albero della Pace), 1996’. 필자 제공
나는 오래전 로마에서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의 걸작 ‘아폴로와 다프네’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사랑을 좇는 아폴로와 그 사랑을 거부하며 월계수로 변하는 다프네의 몸짓은 대리석을 넘어선 생명, ‘엘랑 비탈’ 그 자체였다. 베르니니의 대리석 조각 손끝에서 피어나는 월계수가 사랑과 두려움이라는 인간 감정의 깊은 사연을 품었다면, 로지의 청동 조각 손끝에서 자라나는 올리브는 피맺힌 역사를 거름 삼아 피워야 할 삶과 생명에 대한 희망을 내포한다. 예술가의 특별한 능력은 그렇게 타인의 슬픔을 자기의 이야기로 승화한다.
올가을, 김제 만경읍의 작은 교회에 세워질 순교기념관에는 안드레아 로지의 한국 최초 설치작품이 세워진다. 시골 교회의 부족한 예산을 탓할 만도 하지만, 그는 “다른 곳에서 많이 받았다”며 선뜻 작품을 기증했다. 거기에 직접 한국을 찾아 작품이 놓일 위치를 정하고, 조촐한 개막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국처럼 많은 아픔을 겪고, 그리고 결국은 이겨낸 위대한 한국인에게 보내는 자신의 조그만 위로와 찬사라는 말과 함께.
이 ‘생명의 나무’는 예술가가 역사를 대면하는 태도다.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을 거부하지 않고, 그 상처 속에서 다시 자라나는 생명의 잎새를 담는다. 올가을 이곳에 들러본다면 아스라이 산화한 이들을 색다르게 기리는 경험뿐 아니라, 예술이 역사를 껴안는 특별한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예술 또한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대화라는 단순한 진실을.
임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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