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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도 걸어도> 스틸
ⓒ (주)영화사 진진
어느 여름날, '료타'와 아내 '유카리', 아들 '아츠시' 가족은 함께 료타의 부모님이 사는 바닷가 마을로 향한다. 10년 전 해변에서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다 사망한 료타의 형 준페이의 기일이다. 흩어진 가족은 매년 이날마다 제사를 추천증권
지내려 모이는 것이다. 료타는 고향집에 돌아가는 게 썩 내키지 않는 눈치다. 하룻밤 자고 가기로 통보했지만, 핑계를 댈 게 없냐며 유카리에게 문의하다 살짝 면박을 당하기도 한다.
한편, 인근에 사는 료타의 누나 '치나미' 가족은 한발 먼저 도착한 상태다. 치나미는 엄마 '토시코'와 대화를 나누며 제사 준비에 한창이다. 줄기세포테마주
치나미는 노부부가 조용히 사는 고향 집을 개조해 같이 살자는 제안을 던진 상태이지만, 의사로 오랫동안 근무하다 은퇴한 아빠 '쿄헤이'는 썩 내키지 않는지 확답을 피한다. 자수성가해 지은 집을 원형 그대로 의원을 운영할 때처럼 보존하고 싶은 눈치다.
마침내 가족이 모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보이지만, 묘한 엇갈림도 관측된다. 료타의 아내 유해운주
카리는 사별 후 그와 재혼했고, 아들은 전남편과 사이에서 태어났다. 핏줄이 이어지지 않은 손자에 관한 노부부의 태도는 노골적이진 않아도 묘한 그늘이 있다. 사실상 외아들인 료타에게 부모의 기대는 작지 않지만, 료타는 늘 그런 요구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1년에 한두 번, 형의 제사나 설 명절 외엔 찾아오는 게 내키지 않는다. 부모도 이를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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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손님이 찾아온다. 첫째 준페이가 목숨을 바쳐 구한 소년 '요시오'는 10년이 지나 20대 중반의 청년이 됐다. 가족은 해마다 그에게 기일이 다가옴을 알리고, 생명의 은인에 대한 감사와 유가족을 향한 죄책감으로 요시오는 빠지지 않고 참석해 왔다. 거북할 수 있는 자리에 꼬박 들러 진땀을 빼는 청년이 안쓰러운 료타는 이제는 그만 불러도 되지 않최신릴게임
겠냐며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지만,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시대 가족의 알파와 오메가
가족이란 소재는 드라마 영화에서 연애 로맨스물과 함께 빠지지 않는 단골 배경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수히 많은 영화가 가족물 성격을 지닌다. 아무리 시공간의 차이가 크더라도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 형태가 가족이란 건 불변의 이치다.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룰 때 뺄 수 없는 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현재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손꼽히며 국내에도 열광적인 팬을 보유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1세기 현역으로 활동하는 전 세계 감독 중에도 이 '가족영화'의 대가로 첫손에 꼽힌다. 그의 여러 대표작에서 섬세하게 묘사한 가족 간의 교감과 갈등, 상처와 협력의 정밀함은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밀하고 사려 깊어 볼 때마다 혀를 내두르게 만들 정도다.
그런데 특이점이 더 추가된다. 그의 영화에서 소위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딱히 특별한 비극이나 상처 없이 원만하게 혈연이 계승되고 사이가 좋은 그런 가족은 단 한 번도 주역으로 등장한 적이 없다. '설마 그럴 리가?' 하며 기억을 더듬던 관객은 '정말 그렇네?' 하며 당황하곤 한다. 평범한 사연이 이어지던 이야기를 다시금 복기하면, 확연히 갈라지고 모가 난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감독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아무도 모른다>에선 무책임한 부모의 방기로 대도시에서 마치 정글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생존하는 어린 남매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사랑하는 아들이 알고 보니 병원에서 뒤바뀐 남의 애라는 사실을 확인한 아버지가, <어느 가족>에선 함께 살며 미운 정 고운 정 가득해 보여도 실제로는 누구도 서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들로 조합된 가족이 주역으로 등장한다. 세간의 무책임한 속설에 따르자면, 결혼 상대로 결격사유 가득한 주인공들만 잔뜩 등장하는 셈이다.
그런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걸어도 걸어도> 역시 지극히 가족적인 배경, 일찍 세상을 뜬 아들이자 형님/오빠(그리고 아주버님), 은인의 제사 전후로 딱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제사를 앞두고 가족이 모이고, 함께 제의를 치르고 식사한 뒤, 차례로 떠나고 헤어진다. 굵직한 전개로만 들여다보면 이게 사실상 전부다. 딱히 굴곡진 사건 전개도, 엄청난 비밀이 갑자기 폭로되지도 않는다. 겉으로만 봐서 주인공과 가족들에게 영화 개시와 종료를 비교할 때 특별한 변화랄 것도 없다. 그런 심심한 이야기를 2시간 내내 집중하게 만드는 솜씨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만약 내가 처한 상황이라면?
▲ ?<걸어도 걸어도> 스틸
ⓒ (주)영화사 진진
요코야마 가족은 첫째 아들의 비극 외엔 남부럽지 않은 형편이라 간주할 만하다. 가장 쿄헤이는 동네 주치의처럼 오랫동안 봉직한 존경받는 의사고, 아내 토시코는 남편을 성실하게 내조하며 문제 될 것 없이 자녀를 양육했다. 둘째 료타는 의사가 되길 기대한 부친의 바람과 달리 미술품 복원사가 되긴 했지만, 그럭저럭 가정도 이루고 원만하게 살고 있다. 딸 치아미도 남편과 화목하고 다복한 가정을 이뤘다. 세상 살면서 이 정도 풍파쯤은 누구나 다 겪는 일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가족은 10년 전,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장남의 이른 죽음에 여전히 포박당한 상태다. 자신의 직업에 보람과 자부심을 강하게 느끼던 쿄헤이는 자식들이 뒤를 물려받길 기대했지만, 의원은 자기 대에서 끝나고 만다. 물론 시골 동네 작은 의원이 인근에 들어선 종합병원과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음을 내심 인정하지만, 자존심은 꺾이지 않는다. 아들은 그런 아빠의 애증 섞인 기대와 권위적 태도에 신물이 나 반쯤 의절한 상태다. 부자간의 대화는 평범해 보여도 오가는 말마다 가시가 비죽 튀어나온 느낌이다.
치아미는 쾌활한 성격에 가족 사이를 중재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화기애애한 가정을 이뤘음에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진 않은 형편 탓에 은근슬쩍 부모에게 좀 더 기대고 싶은 속물적 근성을 숨길 순 없다. 타산적이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이고 모남이 없어 보이는 캐릭터다. 치아미의 남편과 티격태격해도 사이좋은 남매 역시 오히려 가장 '보통 가족' 모습이다.
한편, 료타 가족은 누구도 이 자리가 편하지 않다. 료타는 형의 빈 자리를 계승하길 원하는 과도한 기대감에 질식해서, 과부 취급을 은연중에 받는 유카리는 친절하게 대하듯 보여도 결정적 순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차별 대우에 욱하는 마음을 간신히 억누른다. 이 가족과 혈연이 섞이지 않은 아츠시는 모든 게 어색하고 낯설기만 하다. 엄마의 재혼으로 한 가족이 된 료타에게도 아직 '아빠'라 부르기 어색한데, 졸지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생겼다. 서로 난처한 동거의 시간이 편할 리 없다.
하무엇보다 파격과 반전을 던지는 존재는 엄마인 토시코다. 쿄헤이와 달리 료타도 엄마에겐 친근하게 말을 걸 정도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듯 보인다. 아들이 준 용돈을 반색을 표하며 받아들이고, 남편을 채근해 자식과 잘 좀 지내라 요구도 한다. 그래서 료타 역시 요시오에 관한 속내를 털어놓고 동의를 구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에 관한 토시코의 감춰둔 입장은 순식간에 그녀에 대한 인상이 바뀔 만큼 충격적이다.
문제는 그런 얼음장 같은 생각을 전혀 매도하거나 단죄할 수도 없다는 점일 테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착잡하게 동의를 표하는 관객이 적지 않을 테다. 탐탁하지 않은 며느리를 챙기듯 하면서도 마음의 장벽을 허물지 않는 태도, 남편의 과거 허물을 절대로 잊지 않고 상기하는 서릿발 같은 뒤끝들은 잔잔하게만 흐르는 것 같던 영화의 결정적 순간으로 손색이 없다.
이것이 가족인가
▲ ?<걸어도 걸어도> 스틸
ⓒ (주)영화사 진진
물론 감독은 평온한 가족의 이면에 숨은 감정과 갈등을 폭로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고도의 균형감으로 빚어낸 이야기는 그런 지극히 평범한 가족 개개인의 심리와 상처를 오래된 흉터 후비듯 끌어내면서도 마음 편하게 지켜보던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영화를 계속 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게 영화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어떤 것인가? 의문을 제기하며 인생에 관한 성찰을 주문한다.
보고 있자면 화들짝 놀라거나 섬뜩한 순간이 종종 찾아든다. 하지만 그저 깜짝 충격요법으로 그치지 않는다. 찰나에는 충격과 당혹에 휩싸여도 곰곰이 돌아보면 지극히 인간적인, 혹은 누구라도 그럴 수 있는 생각과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감독이 가족을 소재로 꾸준히 작업해 온 것은, 인간이란 존재의 한길 속을 알 수 없는 모호함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누구나 친근하게 심리적으로 무장 해제하게 마련인 가족 드라마의 뜻밖의, 하지만 지극히 효과적인 활용법이라 하겠다. 소위 '막장' 드라마와는 정반대의 방식이자 기대효과다. 후련하게 캐릭터를 욕하고 대리만족하는 게 아니라 저게 나라면 하고 뜨끔한 반성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에게 우여곡절의 하루가 서서히 흘러간다. 오랜만에 모인 대가족은 서로 품고 있던 응어리를 해소하지 못한 채 가시 돋은 공방을 이어가고, 굳이 꺼낼 필요 없는 푸념으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의절이라도 할까 염려할 만큼 위태로운 순간이 속출하고 어디 풀 데 없어 끙끙 앓거나 얼른 시간이 지나기만 소원을 빌기도 한다. 다음 명절에는 꼭 핑계를 만들어 빠져야지 다짐은 당연히 따라붙는다.
그럼에도 결국 가족은 자연 수명이 다할 데까지, 인연이 끝나기 전까지 제목처럼 지긋지긋한 걸음을 함께 이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님을 증명하듯, 그렇게 독설을 주고받으면서도 장성한 자식들이 떠날 때 노부부의 표정은 착잡하고 아쉬움이 가득하다. 자식들은 얼른 떠나야지 하면서도 못내 마음 한구석에 미련과 회한이 남는다. 그런 지독하게 인간적인 감정이 결말에서 극대화할 때, '가족이란 무엇인가' 새삼 돌아보게 하는,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마성의 영화다.
[작품정보]
걸어도 걸어도
Still Walking
2008｜일본｜드라마
2025.05.21. (재)개봉｜114분｜전체관람가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키키 키린, 하라다 요시오 외
수입/배급 (주)영화사 진진
공동배급 ㈜하이스트레인저
▲ ?<걸어도 걸어도> 포스터
ⓒ (주)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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