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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 明

70여명 육탄전 ‘엑스칼리버’

LED무대 ‘안나 카레니나’등

연출·안무·노래 등 관객 압도

해외서도 인정받고 역수출도

- 暗

‘엑스칼리버’

티켓파워 스타몸값 천정부지

제작사는 흥행해도 수입 적어

국내창작물 소외현상 부추겨

“다양한 층위서 함께 발전해야”

‘안나 카레니나’ ‘엑스칼리버’ ‘맘마미아’ ‘벤허’. 올여름에 국내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대형 뮤지컬의 이름들이다. 각기 1000석 이상의 극장에서 상연하는 이들 작품은 미국 브로드웨이 못지않은 수준으로 관객을 사로잡을 것이 분명하지만, 뮤지컬 마니아들 중에는 고가의 티켓 탓에 관람을 망설이는 이들도 꽤 있다. 외국 원작을 사들여 국내 작품으로 만든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은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한국 공연 시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작품이 무대에서 빛나는 만큼 그 뒤쪽의 그늘도 길게 드리워져 있다.

‘벤허’

◇세계적으로 빛나는 작품 수준 = 오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3022석)에 오르는 ‘엑스칼리버’는 무대 위에서 70여 명이 등장해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을 선보인다. 이는 세종문화회관 무대 크기(프로시니엄아치 형태로 넓이 11m, 깊이 35m, 높이 11.86m)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으로, 가위 장관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도 쉽게 만나기 힘든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대형 뮤지컬들은 무대 연출의 박진감이 미국, 유럽 못지않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러시아 작품을 들여와 현재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1766석)에서 상연 중인 ‘안나 카레니나’도 발광다이오드(LED) 영상을 이용한 무대 장치가 관객을 압도한다. 내달 16일 LG아트센터(1103석)에서의 개막을 앞두고 배우들이 맹연습에 돌입한 ‘맘마미아’도 노래에 어울리는 환상적인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내달 30일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선보이는 ‘벤허’도 대작을 표방한 작품답게 역동적인 무대가 기대되고 있다.

이들 작품은 한국 관객의 정서에 호소하면서도 원작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맘마미아’가 지난 2004년 국내에서 초연한 이후 지금까지 연출가 폴 게링턴, 안무가 리아 수 모랜드 등 영국 출신 아티스트와 지속적으로 작업을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올해 작품에도 참여, 배우 오디션부터 챙겼다. ‘안나 카레니나’도 러시아 제작진이 연출, 음악, 무대 등 제작 전반을 맡았다. ‘엑스칼리버’도 대본, 연출, 음악 등을 외국 전문가가 맡아서 국내 스태프들과 협력했다.

이렇게 해외 제작진이 직접 한국에 와서 작업하는 것은 작품 수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세계 뮤지컬계와 소통하는 창구 역할도 한다.

해외 뮤지컬계가 인정하는 프로듀서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프로듀서 1세대인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를 비롯해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 등은 공연별로 부침이 있긴 했으나 한국 뮤지컬을 양적, 질적으로 세계적 수준에 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들은 후배 프로듀서를 키워 제작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것에도 힘써왔다.

‘맘마미아’

그 덕분에 제작비가 100억 원대를 훌쩍 뛰어넘는 작품들에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해외 아티스트들이 적극적으로 한국 작품에 참여하는 것도 이들 프로듀서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들 중 일부는 돈벌이에 급급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외국 작품을 들여와 국내 무대에 올린 후 그것을 다시 역수출할 수 있는 공력을 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인정받고 있다.

◇등골 브레이커의‘그늘’= 대형 뮤지컬 작품은 ‘등골 브레이커’라는 말이 있다.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 뮤지컬 작품을 보려면 등골이 휘는 탓이다. 대형 뮤지컬 작품의 최고 좌석이 보통 14만 원대. 상대적으로 싼 것도 10만 원에 육박한다. 제작사들이 각종 할인 혜택을 주긴 하지만 티켓을 산다는 게 만만찮은 일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뮤지컬을 힘들여 만든 제작사가 그 수입을 가져가지 못하고 외국 원작자와 인기 스타 배우만 돈을 벌어간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들여오는 탓에 원작료를 많이 지불할 수밖에 없고, 관객이 선호하는 인기 스타들의 출연료는 천정부지여서 시장 구조가 왜곡된 것이다.

국내 대표적 제작사인 신시컴퍼니는 이런 문제를 중시, ‘스타라고 해도 노래, 연기를 인정받지 못한 배우는 우리 작품에 출연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신시컴퍼니도 외국 원작인 ‘맘마미아’를 수입 원천으로 삼아 흥행력이 떨어지는 연극 작품 등을 후원하는 실정이다. ‘맘마미아’는 장기 공연하면서 고정 관객을 많이 확보한 덕분에 원작료 이상의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신시 측의 귀띔이다.



흥행이 보장된 외국 작품에 의존하다 보니 창작물이 소외 받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다. 올여름 국내 관객이 만날 수 있는 대형 창작품은 각 지역에서 단발 공연하는 ‘영웅’ 10주년 기념 작품뿐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젊은 뮤지컬 마니아들이 중소형 창작품에 애정을 보이며 중소 극장 무대를 찾아주고 있는 것은, 그늘 속에 비치는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창작 뮤지컬을 꾸준히 만들어 온 한승원 HJ컬쳐 대표는 “작품을 초연하기 때문에 그 성패를 알 수 없어서 배우 캐스팅과 투자 유치가 늘 어렵지만, 젊은 관객들께서 우리 작품에 애정을 갖고 공연장을 찾아주시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만든 창작품이 외국의 라이선스 뮤지컬과 함께 관객을 다양한 층위에서 만나야 공연 예술이 풍성하게 발전한다고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창작물에 대한 공공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창작 프로그램 개발 단계에 집중되고 있는데, 그것을 유통·배급·마케팅 쪽에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업계와 관계 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대목이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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