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학원 선전캠퍼스에선 중국의 과학 기술 발전을 이끈 과학자들의 영웅화가 한창이다. / 선전=강경주 기자


중국 광둥성 선전 난산에 조성된 '중국국가인재공원(Talent Park)'에 가면 두 가지 사실에 놀란다. 쾌적하게 조성해놓은 초대형 공원의 아름다운 풍경과 이와 대비되는 빌딩 스카이라인이 선전 앞바다에 비쳐 시선을 압도한다. 두번째는 국가공원에 중국을 대표하는 과학자 100인의 사진과 이름, 업적을 기록해놓은 조형물을 설치해 과학인을 영웅처럼 대접한다는 점이다.
?산책길에 로봇 설계자 조형물…中 과학기술 성지 가보니



선전 난산 중국국가인재공원개미합창단
에 조성된 과학자 동상 / 선전=강경주 기자


기자가 인재공원을 방문한 지난달 8일 공원 인근에 위치한 알리바바 연구개발(R&D) 센터에서 주황색 회사 티셔츠를 입은 연구원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이들은 과학자 조형물 앞에서 자유롭게 회의를 하며 브레인스토밍에 여념이 없었다. 과학자 조형물에 부착된 Q해동선
R 코드로 사진을 찍은 뒤 그의 업적을 자녀에게 설명해주는 부모들의 모습도 빈번하게 마주쳤다.
인재공원은 2017년 선전 지방 정부 주도로 조성됐다. 위치는 화웨이, 텐센트, DJI 등 중국 대표 테크 기업이 밀집한 난산이다. 공원 내에는 국가 중점 인재 프로그램 홍보 전시관, 유망 스타트업 쇼케이스 존, 기술 창업자를 위한 네트워킹 거점디엔에프 주식
등이 함께 조성돼 있다.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기술 인재를 위한 정책 체험형 공원이라는 콘셉트를 구현했다. 공원 외곽 산책로에는 중국의 주요 과학기술 업적과 핵심 인물들이 벽화처럼 전시돼 있다.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주임 엔지니어, 톈저우 우주선 설계자, 양자컴퓨터 알고리즘 개발자 등 첨단 기술 분야 공로자들이 조각상과 함께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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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재공원에 조성된 과학자 조각상. 하단에는 꾸리촹신 콴룽쓰빠이(鼓??新 ?容失?)라고 쓰여 있다. '창의성에는 격려를 실패에는 관용을'이란 뜻이다. / 선전=강경주 기자


선전 중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난산에 인재공원을 조성해놓바다이야기주소
고 인민들에게 "국력은 과학자에게서 나온다"고 교육하는 모습은 우리가 알던 '짝퉁 제조 국가' 중국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안식년을 보낸 차석원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인재공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인재 정책 실험지"라며 "중국이 과학 인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라고 말했다.
선전은 중국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봇공학, 우주항공 분야 선도 기술 기업이 밀집한 '레드테크'의 최전선으로 꼽힌다. 텐센트, 화웨이, 샤오미, 알리바바 외에도 급성장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림스다이나믹스, 유니버설로보틱스, 로봇모션랩 등이 이 지역을 거점으로 한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을 비롯한 차세대 로보틱스 기술은 중국이 '테크 독립'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테크 리더'로 도약하는 데 있어 핵심 분야다.
시진핑 "과학자는 공산당과 인민이 가장 신뢰하는 동반자"



국가인재공원 전경. 각 기둥마다 중국을 빛낸 과학자의 업적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 선전=강경주 기자


올해 중국 양회 정부업무보고에선 '뛰어난 혁신 인재 강화, 중점 분야 긴급 보충 인재 및 고급 기술 인재 양성'이 과제에 포함됐다.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인사부)에 따르면 중국의 고급 기술 인재는 6000만명 이상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대우가 박하다는 인식이 형성돼 눈길을 끈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 및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들은 "기술인들의 임금 상승폭이 크지 않고, 일부 직군의 기술 가치가 임금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고급 기술 인재의 대우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추닝훙 전인대 대표는 "고급 기술 인재의 대우 수준을 높이면 기업에 더 큰 활력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인재공원 내부에 조성된 조형물. 글로벌 각국의 언어로 '인재'를 새겨놓은 모습이다. / 선전=강경주 기자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지난해 '인간형 로봇 산업 발전 로드맵'을 발표하며 휴머노이드를 디지털 경제의 핵심 구성이자 신성장동력으로 명시했다. 이에 따라 중국과학원(중궈커쉐위안) 산하 선전 인공지능혁신센터, 선전 로봇창업기지 운영 등 국가급 연구개발 기지와 전문 인력 양성체계도 정비됐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향후 반도체, 5G, 전기차 다음 먹거리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정부는 과학자들을 단순한 '기술자'를 넘어 미중 패권 전쟁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쥔런(군인)'으로 대우하며 전례 없는 보수와 연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중국 과학기술부는 지난해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연구자 12인을 '국가청년과학자'로 지정해 최대 1000만 위안의 연구비와 주택·의료·자녀교육 패키지 지원을 제공했다. 중국은 지난해 과학기술 예산 3710억위안 가운데 상당액을 휴머노이드와 AI에 투자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23년 국가과학기술진보대회에서 "국가 전략 인재는 국가의 근본이며, 과학자는 공산당과 인민이 가장 신뢰하는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현재 과학기술자 전용 병원, 전용 보육시설, 고속철 좌석 예약 우선권 등 사회문화적 예우도 확산 중이다. 중국과학원 소속 원로 과학자들의 생애 업적은 초중등 교과서에도 실리며, 베이징과 상하이 등지에는 과학자 전문 박물관이 개설돼 있다. 차 교수는 "중국은 인재를 기술 독립의 핵심 자산으로 여기고 '기술=인재=국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을 정책으로 받아들였다"며 "한국은 여전히 연구개발과 인재양성을 따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전=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