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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l 이영도 지음, 황금가지(2025)


빨갛게 익어가는 감은 가을의 상징이지만, 한국의 판타지 독자들에게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한국 판타지 문학의 역사인 이영도 작가가 집필하지 않을 때는 감 농장에서 일한다는 소문 탓에, 감이 너무 잘 익으면 “올해 작품을 볼 수 있으려나” 하는 독자들의 탄식이 밈처럼 나돌곤 했다. 하지만 올가을에는 애꿎은 감을 원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장편 신작이 나왔으니까.
소설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은 초자연적 판타지 미스터리이다. 심장에 바다신릴게임 단검을 맞아 죽은 피해자 본인이 사건의 진상이 거울처럼 묘사된 소설을 써 내려간다는 것이다. 집필 기간 4년, 무려 아홉권이 넘는 분량의 대작은 곧 완결 직전이다. 피해자는 그라이만 국의 유명 작가, 휴름 자작 어스탐 로우이다. 여기에는 본연적 모순이 있다. 죽은 사람이 4년 동안 글을 쓴다면, 이것이 과연 살인 사건일까? 이 책에 담긴 고발에는 언데드의 오리지널바다이야기 사악한 술수가 개입되지 않을까? 늑대인간 사란디테와 어스탐 로우의 유산관리인인 더스번 칼파랑 경은 사건 현장인 “오소리 옷장”, 할라도 백작 눌드 레초의 별장에 와서 이 질문의 답과 진범을 찾으려 한다. 4년을 버틴 왕국의 수사관 스벤더 경은 결말이 드러날 범인을 체포할 태세를 갖춘다.
이 소설은 고전적 추리 요소와 판타지 구성을 결합하 손오공릴게임예시 여 독자들을 사건으로 끌고 간다. 이 사건에는 추리 소설로서 어엿한 동기와 흉기, 클로즈드 서클과 유사한 환경 속 확실한 용의자 네명이 있다. 판타지 설정으로는 원고의 관리를 맡으려는 사서 세명, 아니 세 존재가 등장하고, 이어서 원고의 완성을 원치 않는, 존재조차 말할 수 없는 검열자가 공격해 온다. 이 소설에서 사고 논리는 수많은 암시와 은유에 가려져, 게임몰릴게임 책에 동봉된 인물 관계도를 작성하면서 읽어도 선형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렇게 미로에 빠진 느낌에서 벗어나려면, 현재 익숙한 세계 인식에 거리감을 두고 사고 회로를 바꿔야만 한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판타지는 개성적인 담화 구조로 실현된다.
결국 좋은 서사는 어떤 혼란이 있대도 늘 궁극에는 자신만의 질서에 다다르는 법이다. 백경게임랜드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도 완결에 이르러 어떤 해답을 준다. 어스탐 로우가 죽어서도 계속 글을 써서 밝히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 이 소설은 결국 글이란, 문학이란 무엇이며, 작가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이영도 작가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독자가 무엇을 일으킬 수 있는가에 관한 소설이다. 이것이 바로 사건의 진상이다.



박현주 작가


감이 여러번 익어갈 동안, 작가를 기다렸던 독자들이 있다.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은 작가가 그런 독자들에게 보내는 추수 감사와 같은 선물이다. 소설의 마지막, 글이 태어날 수 있었던 힘은 독자들에게서 왔다는 표현이 있다. 칼에 심장을 찔리고도 작가가 글을 생산하고 거둘 수 있었던 이유이다. 호반 도서관에서 온 사서 네롤은 고독한 작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다. 독자들이 작가를 위해서 해주는 가장 큰 일은 기다려주고, 기대해 주는 일이다. 그렇게 글이 탄생한다.
박현주 작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