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go !! 바로가기 go !!

지난 12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소소한 소통’ 사무실. 일하는 곳인데도 아이들이 한편에서 책을 읽거나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사무실 안이 익숙한 듯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직원들을 “엄마” 또는 “이모”라고 불렀다. 백정연(45) 대표는 이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기자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들이 아이를 맡길 데가 없을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땐 직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출근합니다. 방해될 것도 없고 오히려 애가 걱정되면 일이 손에 안 잡히잖아요.”



‘소소한 소통’에선 직원들이 아이, 반려견과 동반 출근할 수 있다. 지난 12일 홍사강(맨 왼쪽) 디자인 파트장은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를, 주명희(왼쪽에서 둘째) 총괄 본부장과 이은수 커뮤니케이션 파트장은 아이를 데려왔다. /장련성 기자


2017년 설립된 소소한 소통은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다. 인지 발달이 더디거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 등이 다양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도록 전환하는 작업을 한다. 예컨대 보이스 피싱을 ‘전화로 상대방을 속여요’라고 쉽게 바꾸고, 이를 시각화해 문서나 책, 교육 자료 등을 만드는 식이다.
21명이 근무하는 이 회사는 이미 4.5일제 근무를 시행하고 있 다. 매주 금요일은 4시간씩만 근무한다. 평일엔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월 8회 재택근무도 가능하다. 장기 근속자뿐 아니라 생일을 맞은 직원에게는 유급 휴가를 준다.
소소한 소통은 업계에서 특이한 회사라는 얘기도 듣는다. 규모가 작은 업체의 경우 출산이나 육아에 도움이 될 만한 제도를 아예 갖추지 못했거나, 제도가 있더라 도 허울뿐인 곳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도 육아나 출산이 일에 방해된다는 인식이 남아 있는 탓이다. 2022년, 2024년생 아들 둘을 키우는 이은수(35) 파트장은 “육아기 단축 근무 제도를 활용해 오전 9시 반에서 오후 4시 반까지만 일을 하고 있다”며 “맞벌이를 하고 있어서 아이들 등·하원 시간이 바쁜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있는 주명희(42) 총괄본부장은 “회사의 육아 제도가 입사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아이가 어릴수록 병원을 가는 등 예상치 못한 일이 많이 생긴다. 출퇴근 시간 조정과 재택근무 등을 통해 육아의 어려움을 줄일 수 있었다”고 했다.
이 회사가 처음부터 지금 같은 육아·출산 관련 제도를 갖춘 건 아니다. 기업의 크기도 작은 데다, 직원들이 재택근무 등 자율적으로 일할 경우 업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 백 대표는 “작은 회사다 보니 복지 제도를 도입할 때 한꺼번에 할 순 없다”며 “직원들과 토론하며 조금씩 확대하고 있다. 4.5일제 근무도 한 달에 한 번만 금요일 근무를 단축하는 식으로 시행했다가, 다들 만족감이 커 조금씩 넓혀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소소한 소통은 전체 직원의 86%가 여성인 회사다. 출산·육아 등에 따른 경력 단절을 막는 게 회사의 경쟁력과도 직결돼 있다. 아이 양육 문제로 퇴사자가 발생하면 새 인원을 뽑아야 하는데, 교육하고 경력을 쌓는 데 시간과 비용이 더 소모되기 때문이다. 백 대표는 “여성을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리더로 키우는 게 회사를 더 경쟁력 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소소한 소통은 출산·육아휴직을 택한 직원이 공백 없이 업무에 복귀하도록 1~2개월 전부터 휴직자와 접촉해 면담도 갖는다. 이전에 하던 일을 할 수도 있고, 다른 직무를 맡기도 한다. 이 파트장은 “육아휴직 후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전담하는 더 큰 역할을 부여받게 됐다”며 “회사 복귀 전부터 회사와 소통이 많다 보니 출산이나 육아로 경력이 단절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했다.
회사가 이 같은 제도와 정책을 유지하는 데는 ‘소행성(소소의 행동하는 다양성 위원회)’이라고 불리는 직원들의 자발적 위원회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달에 한 번씩 정기 회의를 진행하는 이 모임은 회사 곳곳에서 느끼는 직원들의 고충을 논의하고, 이를 해결할 아이디어도 제안한다. 실제 이 회사가 내놓은 대부분 제도 역시 직원들의 건의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백 대표는 “직원들이 회사가 잘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의견을 내놓는 것”이라며 “그게 반영이 되면, 복지뿐 아니라 업무에서도 뭔가 해보고 싶은 역동성이 만들어진다. 선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 같은 분위기는 구체적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고용노동부의 남녀 고용 평등 분야 우수 기업으로 선정돼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우수 기업 중에선 가장 규모가 작지만, 대기업 못지않은 제도를 갖췄을 뿐 아니라 실제로 직원들의 출산·육아에 기여하고 있음을 공인받은 것이다.
이직도 거의 없다. 이날 만난 직원들은 하나같이 “회사의 제도는 의논하고, 만족할 만한 성취를 이뤄가자는 데서 자연스레 나온 결과물”이라고 했다. 백 대표는 “1인 기업으로 시작해 21명이 근무하는 회사가 될 수 있었던 건, 회사 자체에 대한 만족도를 주자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제대로 된 출산·육아 제도가 직원들에게 주인 의식을 주고, 일에 집중하게 만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