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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헨 캠핑장 뒷산에 올랐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 만난 작은 교회.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이들이 길에서 보인다. 장보영 제공


피스프 가는 길의 작은 마을
5성급 호텔 안 부러운 캠핑장
뒷산에 오르다 만난 작은 교회
낯선 여행자 향한 환대에 울컥
구글 지도에 접속하면 현재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지도 위 파란색 둥근 좌표는 내가 동서남북으로 몸을 돌릴 때마다 방향을 바꾼다. ‘지도만 있으면 이 세상 어디에 떨 릴게임종류 어져도 두발로 집에 돌아갈 수 있다.’ 이 믿음은 여행을 거듭하면서 강해졌다. 온라인 시대가 도래하며 자연스럽게 종이 지도에서 구글 지도를 이용하게 됐을 뿐, 내 여행의 중심에는 언제나 지도가 있었다.
스위스 체어마트(체르마트)에서 보낸 마지막 밤, 어두운 텐트 안에 모로 누워 무심히 구글 지도를 들여다봤다.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릴게임온라인 그곳은 체어마트에서 피스프(Visp)로 향하는 산악열차 선로에서 15도 정도 이탈한 곳에 자리했다. ‘그레헨’(Grachen)이라는 마을이었다. 마을 이름이 익숙했다. 네팔에 사는 트레일러너 친구가 오래전 이 마을 여행 이야기를 들려줬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국경까지 사흘 동안 달리는 울트라 트레일 레이스가 열리는 마을이라고 했다. 언젠가 백경게임 알프스에 온다면 이 마을에 들러보라고 일러준 기억이 났다.



그레헨을 둘러싸고 있는 산. 신비로운 비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장보영 제공





그레헨 캠핑 바다이야기무료머니 장을 운영하는 사라와 그의 반려견. 장보영 제공


검색해보니 체어마트에서 그레헨까지 가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피스프로 가는 산악열차의 중간 기착지인 장크트니클라우스(St. Niklaus)에서 하차해 버스를 타면 된다. 다행히 그레헨에도 캠핑장이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 그레헨에 갈 이유는 충분했다 바다이야기다운로드 . 여행을 떠날 때마다 으레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은 숙소였다. 오늘 밤 어디에서 지낼지가 정해져야지만 비로소 마음을 놓고 움직였다. 일행이 없는 여성 여행자에게 숙소는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한편, 족쇄이기도 했다. 가보고 싶고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 있어도 숙소가 마땅치 않으면 금세 떠나야 했다. 도심 속 가성비 좋은 게스트하우스가 1인 여행자에게 허락되는 최선의 선택지였다.
이런 현실이기에 텐트가 제공하는 자유는 참으로 소중하다. 모종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요긴한 방법이 캠핑인 것이다. 물론 아무 데서나 캠핑할 수는 없다. 특히 알프스산맥 같은 천혜의 자연 자원을 가지고 있는 스위스는 환경 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해 캠핑장 이외의 장소에서 하는 캠핑은 불법으로 처벌한다. 적발 시 벌금만도 1천 스위스프랑(한화 약 180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캠핑장을 잘 찾으면 문제없다. 이튿날, 체어마트 여정을 마무리하고 장크트니클라우스를 거쳐 그레헨으로 이동했다.



성기령 기자 grgr@hani.co.kr


그레헨은 해발 1620m의 고원에 자리한 산악 마을로, 체어마트와는 직선거리로 약 20㎞ 정도 떨어져 있다. 디스텔호른(Distelhorn), 제탈호른(Seetalhorn), 플라트호른(Platthorn) 등 해발 3000m 고지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방 어디에 눈을 둬도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마터호른을 비롯해 스위스에는 유독 ‘호른’(Horn)이라는 이름의 산이 많다. 호른은 독일어권에선 ‘뾰족한 봉우리’를 뜻하는 명사로 유통된다.



그레헨 캠핑장 사무실. 스위스의 전통 가옥을 개조해 만들었다. 장보영 제공





그레헨 캠핑장 풍경. 장보영 제공


새벽부터 내린 부슬비를 맞으며 그레헨의 캠핑장에 도착했다. 당도한 시각은 오전 8시.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일정이라서 캠핑장 예약은 하지 않았다. 체크인 사무실은 비어 있었다. 마당의 벤치에 앉았다. 기온이 쌀쌀해 배낭에서 버너와 코펠을 꺼내 차를 끓여 마셨다. 신선한 아침 공기에 가라앉은 차분함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사무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캠핑장 주인인 사라가 반려견과 함께 등장해 “오늘의 첫 손님”이라며 나를 환영했다.
사라는 나에게 그레헨 마을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이냐며, 혹시 ‘몬테로사 울트라 트레일 레이스’(Ultra Trail Monte Rosa)에 출전했냐고 물었다. 나는 제네바로 돌아가려는 길에 잠깐 들렀다고 답했다. 사라는 몹시 신기해했다. “이틀 전 170㎞ 울트라 대회가 열렸고 오늘 선수들이 결승선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축제 분위기일 테니 광장으로 가보라고 했다. 사라는 운무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언덕 아래를 가리키며 오후가 되면 해가 뜨고 날이 갤 것이라고 일러줬다.



오토캠핑장인 그레헨 캠핑장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엌, 샤워실, 세탁실 등의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다. 장보영 제공


우선 부지런히 텐트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레헨 캠핑장은 체어마트의 캠핑장과 달리 넓은 오토캠핑장이었다. 이런 이유로 캠핑카에서 생활하는 가족 단위 여행자도 많았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엌, 화장실, 샤워실, 세탁실이 있어 편리했다. 하늘과 대지 사이에 지은 집. 하룻밤 30스위스프랑(한화 약 5만5천원)에 이 정도 시설이면 5성급 호텔이 부러울 것 없었다.
정오와 가까워지자 사라의 말대로 구름으로 꽉 막혀 있던 하늘이 열리면서 푸른 산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레헨 광장으로 향했다. 캠핑장에서 광장까지는 겨우 3㎞ 정도 거리. 하지만 뱀처럼 구불거리는 아스팔트 오르막길을 거슬러 올라야 했기에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도 길 위를 묵묵히 걸었다. 사라의 말처럼 ‘몬테로사 울트라 트레일 레이스’를 알리는 대회 아치가 세워져 있었다. 전장에 나간 병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광장 주위를 맴돌다, 마을을 품은 산으로 향했다.



그레헨 광장에는 ‘몬테로사 울트라 트레일 레이스’가 열린 흔적이 있다. 장보영 제공


산은 언제나 자석처럼 나를 자신의 깊은 곳으로 끌어당긴다. 길 곳곳에 레이스 코스임을 알리는 깃발 등 이정표가 보였다. 목표를 향해 어딘가에서 사투를 벌이며 이곳으로 오고 있을 사람들을 상상했다. 아마 늦은 오후에야 선두권 주자들이 도착할 것이고 마지막 주자는 밤을 넘길 것이다. 산은 마을 뒤편의 낮은 언덕을 아우르며 스키 슬로프로 이어졌다. 산은 고요했다.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검은 암소의 워낭소리뿐이었다.



그레헨을 둘러싸고 있는 산. 장보영 제공


바람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마을이 성냥갑처럼 작게 보였다. 취리히 출신의 동화작가 요하나 슈피리가 쓴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떠올랐다. 이대로 직진한다면 피스프에 닿으리라. 상상의 루트를 그리는데 언젠가부터 이정표 깃발이 보이지 않았다. 통신도 터지지 않아 내 위치 좌표도 알 수 없었다. 산길은 어느새 북벽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어두워졌다. 더 가다가는 조난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다. 호기롭던 마음은 금세 꼬리를 감췄다. 불안함과 두려움에 떨며 이름 모를 능선 위를 한참 서성이다가 겨우 왔던 길을 찾았다. 계획도 없이 산속 길을 잃고 헤맨 나머지 선수들이 완주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나도 언젠가는 정식으로 내 이름표를 달고 이 산을 씩씩하게 달리겠다고 다짐하며 이른 잠을 청했다.
이튿날은 오후 느지막하게 캠핑장 뒷산에 올랐다. 어제의 위험과 체어마트 여정에서 쌓인 여독 때문인지 피로했다. 하지만 다음날이면 이곳을 떠나야 했기에 길을 나섰다. 사라는 인근 가젠리트(Gasenried) 지역으로 이어지는 트레일 하이킹 코스를 추천했다. 가젠리트 트레일은 전날 다녀온 산과 반대 방향이었다. 피스프 방향이 아닌 체어마트 방향인 것이다. 다시 마터호른을 볼 수 있을까? 경사를 조금만 올라갔을 뿐인데 거대한 산이 두 눈을 압도했다. 또다시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가보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전날처럼 말이다.



그레헨 인근 숲속에 있는 작은 교회. 장보영 제공





그레헨 인근 숲속에 있는 작은 교회에 모여 있는 신자들. 장보영 제공





그레헨 인근 숲속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눠 먹은 빵.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장보영 제공





그레헨 인근 숲속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눠 먹은 빵.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장보영 제공


얼마간 오르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산속에서 무슨 일일까? 궁금해서 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곳은 작은 교회였다. 오후 1시, 마침 야외 예배를 올리려 하고 있었다. “어서 와요. 잠시 앉았다 가요. 함께 기도를 드리고 같이 맛있는 빵을 먹어요.” 산의 섭리일까? 제때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해 배가 고팠고, 몸과 마음도 지쳐 있었다. 안내자의 부름에 끌리듯 교회 옆 계단에 앉았다. 동양의 낯선 여행자에게 마을 사람들은 환대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윽고 성가대의 찬송가 소리가 골짜기로 너머로 울려 퍼졌다. 내 두 눈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장보영 ‘아무튼, 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