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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이재명 대통령은 현직 철도 노동자를 새 정부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날 오후 김영훈 후보자는 부산발 서울행 새마을호 운행 중 기관차에서 소식을 들었다. 그는 스물네살 때 철도 기관사로 입직해, 철도노조 위원장(2004)과 민주노총 위원장(2010~2012)을 지낸 ‘철의 노동자’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노동부 장관은 전에도 있었지만, 민주노총 소속 현장 노동자가 발탁된 것은 1995년 민주노총 창설 주식사는방법
이래 처음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인권이 지켜지고 노동이 존중받는 시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앞서 이틀 전인 21일,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금속노조 4층 회의실에선 ‘긴 투쟁 귀한 삶’(노동자역사 한내 펴냄, 이하 한내)이란 책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책의 부제 그대로 ‘동일방직 여성노동자 50년 투쟁의 기록’이다. 1종목포커스
970년대, 인천의 섬유업체 동일방직에 취직했다가 민주노조 활동을 이유로 탄압받고 부당 해고된 조합원 10여명을 비롯해,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원풍모방 노동자, 권영길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과 현 집행부 등 9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일이십대 푸르른 시절에 동일방직에서 민주노조의 꿈을 키우던 여성 노동자들이 어느새 머리가 희끗주식투자정보
희끗한 60~70대 나이가 됐다.
6월 21일 동일방직 여성노동자 50년 투쟁의 기록 출판기념회에서 권영길 민노총 초대 위원장이 인삿말을 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반세기가 넘도록 부당해인포피아 주식
고 취소를 위해 싸우고 있는 이들은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노동부 장관을 어떻게 볼까? 동일방직해고자복직추진위원회(이하 복직추진위) 김용자 대표는 “어쨌든 기뻐할 일이고 좋은 일”이라면서도 섣부른 낙관은 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노동운동을 했던 김문수(윤석열 정부)나 원풍모방 노조 지부장 출신 방용석(김대중 정부) 같은 분들도 노동부 장관을 하셨지만, 우리가전종목시세
기대했던 것에는 못 미쳤잖아요. 실망이 컸지요.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간다고 당장 크게 달라질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아요.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죠. 의지가 있다면 (실질적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앞서 2022년 9월께, 김용자 위원장 등 복직추진위 대표단 5명이 한보따리 자료를 들고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한내 사무실을 찾았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 50년 투쟁의 기록’을 쓰기로 결정하고, 그 집필을 맡아줄 최적임자로 한내를 선정했다. 2008년 창립한 한내는 노동운동 기록물 수집·관리·전산화, 노동운동 조직사 및 투쟁사 기록과 전시, 개인 아카이브 구성, 노동자 교육과 연구 지원 등을 전담하는 단체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부당 해고해서 노동자의 삶을 위협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투쟁을 통해서 단결하고 계속 싸우는 한, 우리는 해고된 게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 역사를 다시 정리해 보기로 한 거예요. 젊은 시절 투쟁부터 지금까지 과정을 우리의 말로 적어보고 싶었어요. 노동자는 해고한다고 해서 해고되는 게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끝까지 투쟁하는 게 노동자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김용자 구술)
아래= 2024년 2월, 동일방직복직추진위원회 노동자들이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사무실에서 50년 투쟁 기록을 쓰기 위한 집담회를 하고 있다. 동일방직복직추진위원회, 노동자역사 한내 제공
한내의 정경원 사무처장과 양돌규 연구위원이 복직추진위 집담회와 구술 채록 등을 정리해 책을 집필했다. 정경원 사무처장은 “동일방직 노동자분들이 투쟁과 관련한 온갖 자료와 기록을 워낙 꼼꼼하게 잘 만들어놓으셔서 놀랍고 감탄스러웠다”고 말했다.
동일방직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일본의 5대 방적업체 중 하나였던 동양방적 인천공장에 뿌리를 둔, 1970년대 국내 대표적인 섬유회사였다. 동일방직 노조 운동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굵은 획을 그은 사건들로 가득하다. 그 ‘사건’들은 당사자들에겐 한없이 고통스러웠지만 민주노조 운동의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지난달 21일 출판기념회는 그 소중한 기억들을 되새기며 서로가 잘 살아왔다고 격려하는 자리였다.
정경원 사무처장이 사회를 보고, 오랜만에 만난 동일방직 해고자들과 그들과 연대했던 단체의 ‘동지’들이 번갈아 발언했다. 동일방직 투쟁 당시 ‘동지회보’를 만들었던 석정남의 발언은 모든 참석자의 마음이기도 했다. “여기 오늘 이렇게 보니까 1970년대에 한가락 했던 분들이 다 모이셨어요. 노조에서 그렇게 열성으로 했던 언니 역시 자랑스럽게 이렇게 잘 살고 있구나, 그래서 너무 반갑습니다.” 1984년 석정남은 노동자 수기 ‘공장의 불빛’(일월서각)을 펴내기도 했다. 앞서 1978년 김민기의 음악극 ‘공장의 불빛’에서 제목을 따왔다.
1970년대 인천시 동구 만석동 동일방직 공장 잔디밭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작업복 차림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동일방직복직추진위원회, 노동자역사 한내 제공
반세기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생각하면 울컥해요. 너무 힘들었고 억울했던 일이 많아서. 그때 인천에서 동일방직은 규모가 크고 (노동자들이) 취업을 선호하는 회사였어요. (…) 그런데 공장에 들어가니까 (실내온도가) 40도. 상상도 못 할 거예요. 솜먼지가 날리고 기계 소리도 엄청 컸어요. 그래도 우린 취직을 잘했다고 버티고 있었어요. 중학교 초등학교 나온 일이십대 여공들이었어요.”(최명희)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미싱은 돌고 돌던” 시절이었다.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의 노동 사목과 만나면서 동일방직의 어린 여공들은 노동자 권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민주노조 운동이 그렇게 싹텄다. 당시 동일방직 노조는 한국노총 산하 산별노조인 섬유노조 지부였다. 말 그대로 노동자의 몸을 갈아 넣어 수출 주도 경제성장을 추진하던 시절,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키라” 절규하며 제 몸에 불을 댕겨 숨져갔던(1970년 11월) 시절이었다.
△1978년 3월 동일방직 부당해고 노동자들이 인천산업선교회에서 복직을 요구하며 딘식농성을 하고 있다. 동일방직해고자복직추진위원회, 노동자역사 한내 제공
“노동조합 대의원 선거 할 때, 우리가 여자들이 많으니까 여자 대의원을 뽑아보자 해서 많이 당선됐어요. 그다음엔 노조 집행부까지 여자로 뽑아보는 게 어떠냐 그래서, 처음으로 여성 지부장(주길자, 1972년)을 선출했어요. (…) 처음엔 노조가 뭘 하는지도 몰랐는데 좋아지는 게 하나하나 생기더라고요. 기숙사에 따뜻한 물 나오고, 너나없이 현장에서 일하다 힘든 점 노조에 와서 얘기하고, 생리휴가도 생기고, 그전에는 밥도 빨리 먹고 들어와서 일해야 했는데 식사 시간도 길어졌어요.”(최명희)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았다. 회사와 남성 집행부가 장악한 어용노조, 공안기관들까지 합세한 탄압이 거세졌다. 1976년께부터는 회사 쪽의 민주노조 와해 공작이 본격화했다.
1976년 7월, 불볕더위에 농성 중이던 공장에 경찰 병력이 쳐들어왔다. 다급한 상황에서 누군가 외쳤다. “옷을 벗으면 남자들은 (여자 몸에) 손을 못 댄대!” 여공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옷을 벗었다. 눈물범벅이 된 채 떨리는 목소리로 주먹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수치심도 두려움도 떨쳐버린 최후의 저항이었지만, 경찰은 대의원들을 한명씩 질질 끌어 경찰버스에 실었다. “경찰과 한통속이 된 남자 대의원들은 벗은 몸으로 투쟁하는 나를 몽둥이로 내리치고 구둣발로 허리를 찼다. 쓰러진 나를 남자 네 명이 양쪽 팔다리를 들고 회사 옆 병원 바닥에 쓰레기 던지듯 내던졌다.”(안순옥 구술)
1978년 2월, 노조 집행부 선출을 위한 대의원대회에 구사대가 난입해 여성 노동자들에게 인분을 뿌리는 ‘똥물 테러’ 사건이 터졌다. 선거는 무산됐다. 섬유노조는 동일방직 지부를 사고지부로 규정하고 색깔론을 씌워 제명해버렸다.
2005년 6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동일방직(현 디아이(DI)동일) 본사 정문 앞에서 동일방직해고자복직추진위원회 노동자들이 회사 쪽에 복직을 요구하는 3박4일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다. 동일방직해고자복직추진위원회, 노동자역사 한내 제공
모든 합법적 저항 수단이 봉쇄된 여성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거리로 내몰렸다. 그해 3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노동절 행사 기습 시위, 명동성당 단식 농성, 언론사 항의 방문이 이어졌다. 돌아오는 건 폭력적 진압과 연행, 유치장 구류, 심지어는 “빨갱이년들”이란 욕설뿐이었다. 4월엔 회사가 조합원 124명을 무더기로 해고해버렸고, 섬유노조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업계에 뿌렸다. 졸지에 부당해고 당한 이들은 다른 어디에도 취업조차 할 수 없었다. 어린 ‘여공’들은 절박한 처지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최명희) 복직 투쟁과 블랙리스트 철폐 투쟁을 하며 ‘노동자 투사’가 되어갔다.
그러나 이들의 처절한 투쟁은 신문에 단 한줄도 실리지 않았다. 등사기도 귀했던 시절 ‘동지회보’를 직접 만들어 세상에 알려야 했다. 석정남은 “당시에 동지회보를 몇번 만든 건 사실인데 별것이 아니었다”며 겸손해했다. “지금 같으면 핸드폰 톡방에서 충분히 나눌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었는데 정리해 보라고 해서….”
한내 양돌규 연구위원의 평가는 달랐다. “이번 책을 쓰는데 1985년 돌베개 출판사의 ‘동일방직 노동조합 운동사’가 중요한 참고 문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 책도 다 동일방직 노동자 언니들이 쓰신 기록이 바탕이었습니다. 당시 만든 유인물이나 성명서는 물론이고, 집회·시위나 행사에 갔다가 와서도 누런 갱지에 검정색 모나미 볼펜으로 빽빽하게 ‘오늘 어떻게 해서 무슨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갔고, 어떤 집회를 했고, 누가 잡혀갔고, 누구누구가 왔고, 누구는 무엇 때문에 못 왔고, 이런 깨알 같은 기록들이 굉장히 많이 남아 있어요.”
1980년 5월 동일방직 부당해고 노동자들이 서울 한국노총에서 복직을 요구하는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동일방직해고자복직추진위원회, 노동자역사 한내 제공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데 이어 광주 학살의 핏물을 딛고 정권을 탈취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는 공안정국이 지속됐다. 1982년 12월 대법원은 동일방직 부당해고 무효 청구 소송의 상고심을 기각했다.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최후의 길조차 막은 셈이다. 해고자들은 복직 투쟁을 정리하고 블랙리스트 철폐 투쟁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도 결혼과 출산, 생계 등 생활인의 현실적 삶을 이어가야 했다. 공동 투쟁도 끝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민주노조 활동을 인정받고 복직하려는 꿈은 가슴속 깊게 간직한 채였다.
1987년 6월 민주화 이후 민주노조 운동과 지역사회 운동이 되살아났다. 1999년에는 민주화운동보상법이 제정됐다. 2001년 5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가 동일방직 조합원 신청자 76명 전원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2004년에는 회사 쪽에 희망자들의 복직을 권고했다. 2010년 6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똥물 사건을 배후 조종했고 해고 조치를 지시했다”며 국가권력의 범죄를 인정했다.
“국가기관이 노동조합의 설립과 활동, 선거에 개입하고 (…) 불법 구금을 자행하면서 (…) 이들 사업장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계에서 최초로 작성된 명단이 경찰과 노동부, 중앙정보부 등에서 확대 재생산되어 이른바 블랙리스트 형태로 관련 기관과 사업장에 배포됨으로써 이들의 재취업을 가로막아 생존권을 위협한 것도 확인되었다.”(진실화해위 전원위원회 진실규명 결정 통지문)
1978년 2월21일 새벽 동일방직 민주노조의 대의원 선거를 방해하고자 회사 쪽과 반대파 남자 조합원들이 노조 사무실에 똥물을 뿌리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작업 현장에 있던 여성 조합원들은 일제히 노조로 모여들었다. 사진은 ‘동일방직 노동조합 운동사’(1985, 돌베개)에 실려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두달 뒤, 복직추진위는 국가를 상대로 부당해고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복직 투쟁에도 힘이 실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부는 수많은 인권침해 사건들의 국가배상 책임을 부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한 뒤인 2018년 1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판사가 또박또박 판결문을 읽었다. “국가는 원고 동일방직 노동자들에게 별지 목록에 기재된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라.”
동일방직의 20대 여성 노동자들이 국가로부터 민주노조 활동의 정당성과 부당한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까지 5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출판기념회에서 정경원 사무처장이 말했다. “언니들은 민주노조를 지키고, 해고되면서는 블랙리스트 투쟁으로 자본의 착취와 국가의 폭력에 정면으로 맞서 투쟁했고요, 이것이 우리 노동운동의 방향과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자신을 노동자로 만들고, 삶의 주체로 섰다는 점, 50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이긴다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긴 투쟁 귀한 삶’입니다.”
그러나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다. 딱 하나, 가장 중요하고도 근원적인 과제가 남았다. 원직 복직이다. 부당해고가 인정되고 보상도 받았지만, 정작 해고된 공장에는 돌아가지 못했다. 다시 작업복을 입고 공장 기계 앞에 서야 50년 투쟁에 마침표가 찍힐 테다.
“단 하루만 일하고 사표를 쓰더라도 복직을 하고 싶은 이유가 있어요. 산업선교회에서 (활동 공간을 얻어) 지낼 때, 밖에 나가기만 하면 ‘저 빨갱이년들’이라는 욕을 먹었는데 이제라도 명예회복을 해야죠. 또 해고된 뒤 버스 안내양도 하고 어떻게든 일자리를 찾으려 했는데 여덟아홉번 해고(통산)를 당했어요. 그래서 동일방직에 원직 복직이 되지 않으면 블랙리스트는 없어지지 않아요. 동일방직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는 거예요. 그게 상징적이면서도 실질적인 마지막 숙원입니다.”(김용자)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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