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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도 장기도 훈수 두는 사람이 더 고수잖아요. 어차피 세상은 마음이 지어낸 것이죠. 그 마음을 알면 나머진 실타래 풀리듯 저절로 풀리는 법입니다.”
템플 스테이를 통해 청춘남녀가 자신의 짝을 찾는 프로그램 ‘나는 절로’를 기획한 묘장 스님의 말이다. 스님이 주선자가 되어, 경건한 사찰에서 참선 대신 소개팅이라니. 불가해한 것들투성이인데, 이게 소위 ‘대박’을 쳤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낙산사에서, 벚꽃이 흐드러진 쌍계사에서. ‘나는 절로’가 열릴 우리은행 대출상품 때마다 수백·수천 명이 몰려들었고, 매번 커플이 탄생해 화제가 됐다. 그중 두 커플은 오는 11월과 내년 5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스님의 중매 실력이 예사롭지 않은데, 평생 독거하며 수행해 온 이가 중생계의 들끓는 열망과 갈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마 전생에 수없이 결혼하고 이혼했었나 봅니다.” 최근 서울 회기동 연화사에서 만난 스님은 이렇게 인터넷대출사이트 말하며 웃었다.
＃“이번 생은 윤회 벗어난 도전… 그래도 ‘연애 구경’은 재밌어”= 묘장 스님은 지난 2023년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한 직후 오랜 세월 존재감 없었던 조계종의 ‘만남 템플 스테이’를 환골탈태시켜 조계종의 최대 ‘히트 상품’으로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인기 연애 예능 ‘나는 솔로’를 차용해 ‘나는 절로’ 수수료상한제 라 이름을 바꿨고, 소개팅 기능을 강화하고 예능적 요소도 가미했다. 대중의 니즈를 간파한 기획에 응모자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남녀를 만나게 해 저출생 문제 해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분명 ‘잘한 일’이지만, 문득 불가해했던 점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구도와 수행의 공간을 속세의 욕망으로 가득 채워 넣은 건, 불 개인신용등급 법(佛法)에 어긋난 것은 아닐까. 스님은 “불교에선 ‘재가(在家)’와 ‘출가(出家)’에 따라 서로 다른 세계를 살기에 잘못된 것이 아니다”며 일축했다. “부처님도 소유에 얽매인 사람(재가)과 소유에서 떠난 사람(출가)을 구분해서 가르치셨어요. 출가자엔 엄격하지만, 재가자엔 한없이 너그럽죠. ‘나는 절로’는 재가자 세계의 자연스러운 법칙에 순응한 것이니 부끄 sc제일은행담보대출 러울 게 없습니다.”
스님은 자신의 이번 생은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 도전 중이라고 했다. 연애나 결혼과 같은 중생계의 얽히고설키는 인연은 이미 전생에 겪고 이제 털어냈다고 했다. 그래도 청춘들의 불꽃 튀는 탐색전은 늘 흥미롭다. 자꾸 보니 ‘눈’도 트여서, 참가자들이 처음 만나 버스를 타고 사찰로 향할 때 이미 몇 커플이 성사될지도 감지한다. 주선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스님은 제 짝을 못 찾은 참가자를 위로하고, 커플들의 사랑싸움 갈등도 중재에 나선다. 한마디로 ‘애프터 서비스’까지 제공. “쌍계사에서 올라오는 버스에 커플이 안 된 한 청년이 쓸쓸히 하늘 보고 앉아있더라고요. 그때 마침 제가 읽고 있던 책이 잔잔하게 위로가 되는 내용이어서 넌지시 건네줬지요.” 일본 영화 ‘일일시호일’의 원작 에세이 ‘매일매일 좋은 날’이었다. 스님은 “다도와 관련된 얘기라 차라도 마시면서 마음을 다스리라는 뜻이었는데, 어째 다 읽었을지는 모르겠다”며 은근한 미소를 띠었다.
‘청년밥심’에서 묘장 스님(오른쪽)이 식사를 배식하는 모습. 연화사 제공
＃부처님 생카·청년밥심 등 손대는 것마다 ‘히트’… “불교계 더 활기찼으면”= ‘나는 절로’를 통해 잘 알려진 스님이지만, 사실 히트작이 더 있다. 지난 5월 석가탄신일에는 연화사에 ‘생일 카페’(생카)도 차렸다. 아이돌 멤버의 생일에 팬들이 꾸리는 바로 그 ‘생카’를 콘셉트로 ‘부처님 생카’를 마련한 것이다. ‘소원 성취 부적 카드’ ‘약사여래부처 밴드붙여’ ‘연꽃라떼’ 등 재치있는 굿즈와 음료도 판매해 2030 세대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연화사의 ‘부처님 생카’가 잘된 데에는 이 사찰이 자주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덕도 있다. 연화사는 경희대와 한국외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대학 캠퍼스로 둘러싸여 있고, 매주 화요일 점심이 청년들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묘장 스님이 처음 개발하고 열심히 홍보 중인 ‘청년밥심’으로, 연화사뿐 아니라 현재 고려대 인근 개운사를 비롯해 4개 사찰에서 시행 중이다.
청년들은 밥만 먹고 사라지지 않는다. ‘선향제’(善香齊)라고 이름 붙인 묘장 스님의 접견실에 수시로 드나들며 대화를 나눈다. 대부분 연애 상담. 어떤 식으로 조언할지 몹시 궁금했는데, 스님은 “어차피 내가 한마디 하면 지들이 다섯 마디 한다. 들어주는 것에 의의가 있다”며 웃었다. 늘 잔잔한 재즈 음악이 울려 퍼지는 선향제에서 스님은 찾아오는 이들 모두에게 직접 커피를 내려준다. 바 한쪽에 쓰여 있는 ‘묘 브루잉(Myo Brewing)’을 주문하면 된다. 공짜다. 학생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MBTI 테스트라는 것도 해봤다. “애들이 나더러 ‘절대 자살하지 않을 자존감 높은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정확하게 뭔지는 기억이 안 나요, 하하.”
스님이 아니라 문화 기획자나 사업가가 됐어야 하는 것 아니냐 묻자 스님은 “손대는 것마다 터져버리니 그것도 고민”이라며 웃었다. 손사래 치며 몸을 낮추는 대신, 스님은 그동안 증명한 기획력과 실행력만큼 대답도 과감했다. 그는 “불교계가 보다 역동적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누가 좀 치고 나가고, 어떤 사업이 잘되고 하면, 이걸 기본값으로 해서 다 같이 앞으로 더 나갔으면 해요. 여긴 너무 정적이고 다운돼 있어요. 조금은 자극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집착과 번뇌에서 벗어나는 걸 최고의 가치로 삼는 불교의 수행자로부터 예상치 못한 말들을 계속 듣는다. 종교를 성장주의나 능력주의로 추동할 수 있다는 걸까. 혹은, 그래야만 하는 시대인 걸까. 스님은 역시 스님답게 이를 풀이했다. “부처마다 꿈꾼 사바 세계가 다르다”면서 “불교적으로 봤을 때 지금 이 세계는 성취가 빠른 게 특징이고, 우리는 이 세계의 특징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먹고 열심히 하면 뭐든 금방 이룰 수 있는 공덕이 있는 세상이에요.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좋은 때를 보내고 있으니, 우리 모두 좀 더 열심히 살아보면 어떨까요.”
#소설가 김성동 덕에 출가?… “몸에 꼭 맞는 옷이라 후회한 적 없어요”= 연애와 결혼을 적극 권하고, 아이돌 생일카페처럼 부처님 생일상을 차리는 스님. 수행자로서의 삶이 혹시 몸에 맞지 않는 옷은 아닐까 싶은데 “너무 꼭 맞아서 후회라곤 해본 적이 없다”며 다시 너스레가 시작된다. “출가했을 때 날 다들 금방 돌아갈 사람으로 봤대요. 너무 싱글벙글하고 다녔다는 거죠. 정말 좋아서 그랬던 건데…. 근데 웃는 상이 문제가 될 때도 있어서 한동안 거울 보고 안 웃는 연습 많이 했어요. 지금은 좀 어떤가요? ”(웃음)
흔히 출가를 하면, 사람들은 엄청난 시련 끝에 선택한 일이라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스님은 “특별할 것 없었다. 출가 전엔 그저 사랑받는 막내였다”고 했다. 굳이 남들과 다른 점을 찾자면 책을 무척 좋아했고, 어린 나이에 비해 ‘죽음’에 대한 상념이 잦았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 결국 한 가지 결론이었어요. 위대한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선인도 악인도 모두 다 죽는다라는 것….”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다라’로 유명한 승려 출신 소설가 김성동의 수필 ‘부치지 않은 편지’를 읽게 된다. “그때까진 이 세상에 죽음을 이긴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김 작가의 글 속엔 그걸 극복하려는 모습들이 있었죠. 그때부터 불교를 혼자 공부했고,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출가를 결심했어요. 남들 잘 안 가는 길로 가보자 하고….”
새벽 예불 때문에 일찍 취침에 드는 다른 스님들과 달리, 묘장 스님은 ‘야행성’이다. 이런저런 업무를 하고, 책을 읽다가 오전 1시나 돼야 잠이 든다. 김성동을 좋아하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건 소설이다. 특히,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데, 하나만 꼽아달라 하자 스님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또 읽는다고 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앞서 그 쌍계사의 외로운 청년에게 선물한 ‘매일매일 좋은 날’. “새벽 배송으로 받아서 바로 읽고, 쌍계사 가면서 읽고, 올라오면서 또 읽었죠.”
‘저녁형 인간’이라 수행자로서는 조금 고달프다. 어떻게든 새벽 예불에 맞춰 일어나야 하니까. 스님은 힘들지만 고요한 새벽 법당에 깊은 감동이 있다고 했다. “예불 전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아요. 첫 음성을 부처님 전에 올려 드리고, 마음이 흩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죠. 그래서 온전히 홀로 되는 시간인데, 그게 그렇게 평온하고 기쁘답니다.”
묘장 스님이 주지로 있는 서울 회기동 연화사의 접견실 ‘선향제(善香齊)’. 신자들과 인근 청년들이 자주 찾아와 상담을 청한다. 스님이 직접 내려주는 ‘묘 브루잉’ 커피도 공짜로 맛볼 수 있다. 문호남 기자
본업은 ‘구호 전문가’… “세계 재난현장 다니며 부족한 자비 채우죠”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로
미얀마·우크라이나 등 도와
묘장 스님은 불자들과 일반에 ‘나는 절로’의 기획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가장 큰 소임은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로서 180여 개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국내외 재난 현장을 살피고 지원하는 일이다. 물론, ‘나는 절로’와 ‘청년밥심’도 재단 사업 중 하나이지만, 스님의 본업을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구호전문가’에 가깝다.
법등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91년 사미계를 수지한 스님은 자신의 마음 안에 자비가 별로 없다고 느꼈다고 했다. 부족한 자비심을 채우며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골몰했고, 사람이 가장 고통스러운 때, 즉 갑작스러운 재난이 닥쳤을 때 돕자고 판단했다. “재난 현장에 가는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하고 일찍 결심했던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긴급 구호 소임에 뛰어든 건 2008년 불교계 대표 구호 단체인 ‘더프라미스’의 출범과 함께다. 이 단체는 국내에서 발생한 지진과 산불 현장뿐만 아니라 아이티 대지진(2010), 동일본 대지진(2011), 네팔 대지진(2015), 우크라이나 전쟁(2022),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2023) 등 해외 재난 현장에 파견됐다. 스님이 조계종 복지재단을 이끌게 된 데에는 이러한 활동이 크게 작용했다. “부처님의 자비심은 특정 지역이나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적 의지와 삶의 지향점, 그리고 조계종 내 주어진 소임이 모두 결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은 가장 최근엔 미얀마에 다녀왔다. 지난 3월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37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곳이다. 얼마 전 연화사에서 만난 스님은 조금 야위어 보였다. 그는 “비극적인 재난 현장에 다녀오면 한동안 마음이 힘들다. 밥을 잘 먹질 못했다”고 토로했다. “미얀마와의 연은 오래됐어요. 15년간 꾸준히 지원한 곳이어서 그런지 더욱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한편, 재단은 지난 11일 창립 30주년 기념 법회를 열었다. 1995년 ‘깨달음의 사회화’를 내걸고 산하 21개 시설, 종사자 300여 명으로 출범해 현재 181개 시설, 5600여 명으로 국내 대형 복지재단 가운데 하나가 됐다. 한 해 예산만 4000억 원에 이른다. 스님은 “인류 최초의 사회복지사는 부처님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30년간 성장과 성숙을 이뤄낸 재단이 더 원만하고 더 포용적인 사회복지를 실천할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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