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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2월11일 서울대에서 교내 시위가 벌어졌다. 5·18 광주학살 이후 반년여 만에 서울대에서 일어난 첫 시위였다. 나중에 ‘무림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 시위로 주동자 네명을 포함해 학생 11명이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십명이 군대에 강제로 징집되었으며 시위 문건 ‘반파쇼학우투쟁선언’이 좌익 혁명을 선동하는 불온한 내용이라며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등 파장이 컸다. 이 선언문의 작성자는 당시 서울대 국문학과 4학년이었던 문학평론가 김명인(인하대 명예교수)이었다.
2025년 5월 근황. 김명실시간주식정보
인 제공
‘두 번의 계엄령 사이에서’는 김명인 교수가 자신의 지난 삶을 회고하며 성찰을 곁들인 책이다.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졌다. 1부는 무림사건에 이르기까지의 전사(前史)를, 2부는 무림사건과 그에 따른 옥살이를, 3부는 출옥 뒤의 행적을 담았다. 1977년 서울대 인문계열에 입학한 그는 인문대한화섬 주식
대 학회(서클)인 ‘역사철학회’ 활동을 통해 학생운동 지도자로 성장하는데, 당시에 이는 일반적인 절차였다. 1978년 8월 하순, 대성리의 민박집에서는 서울대 내 여러 학회에서 선발된 77학번 학생들이 모여 ‘서울대 서클 연합 77학번 대표자회의’(이른바 ‘77언더’)라는 비밀 조직을 결성했다. 77언더는 이후 “서울대 학생운동의 사실상 실질적 지도부로 성레이젠 주식
장해” 주요 교내 시위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
중학생 때부터 막연히 비평가를 꿈꾸었고 대학 시절에는 학교 신문과 잡지에 시를 발표하기도 한 김명인은 선언문 작성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반파쇼학우투쟁선언’ 역시 그의 작품이었다. 매판 독점자본과 매판 관료집단, 매판 군부를 축으로 삼는 지배세력을 상대로 한 반파쇼 투쟁에 근로대중이 크로바하이텍 주식
주체로 나서야 하며 학생운동은 전체 투쟁을 진행시키는 주도체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이 문건은 후배 학생운동가들의 가슴에 불도장을 새겨 넣었다.
이 사건은 그의 삶 역시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회현동 시경 대공분실에 끌려간 그는 혹독한 구타와 물고문, 잠 안 재우기 고문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옮겨졌파생결합증권
고, 그곳에서 악명 높은 고문 기술자 이근안을 대면한다. “거대한 육식 맹수와 마주 앉은 것 같았던” 이근안의 고문과 취조에 못 이겨 그는 일주일여 만에 서울대 내 ‘언더 조직’의 실체와 구성원들 이름을 털어놓았다.
그를 취조하던 어느 날 이근안은 “갈수록 점점 범위는 커지는데 실체가 딱 잡히지 않아서 안개 숲을 헤쳐나가는 기분”이라 사건 이름으로 안개 무(霧) 자에 수풀 림(林) 자를 떠올렸노라며 그의 의견을 물어 온다. 맹수의 비위를 건드릴 수 없었던 김명인은 “감각이 있으시네요”라고 맞장구를 쳐줄 수밖에 없었고, “어느 날 갑자기 발견된 자기 재능(?)에 대한 나르시시즘”에 도취된 이근안은 그 뒤 역시 자신의 고문 기술로 만들어낸 사건들에 ‘학림’(學林)과 ‘부림’(釜林)이라는 돌림자 이름을 붙이기에 이른다.
1977년 대학 1학년 야유회에서. 김명인 제공
33일간의 불법 구금에 이어 그는 재판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고, 1983년 8월에야 감옥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출옥 뒤의 짧은 무역 대리점(오퍼상) 근무를 거쳐 그는 출판사 풀빛의 편집장으로 취직했고, 줄곧 옥바라지해 온 이와 결혼도 했다. 풀빛에서 자신이 만든 책 가운데에서 그는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과 5·18 기록집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그리고 나병식 풀빛 대표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기소 되기에 이른 ‘한국민중사’를 기억에 남는 것들로 꼽았다.
풀빛에서 일하던 1985년 그는 대학 졸업 논문을 무크 ‘한국문학의 현단계’에 실으며 평론가로 등단했고, 1987년에는 문제적 평론 ‘지식인문학의 위기와 새로운 민족문학의 구상’(‘위기와 구상’)을 발표해 문단 안팎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백낙청 등의 민족문학론을 소시민적이며 지식인 주도의 문학론이라 비판하고 생산 대중이 주체가 되는 민중적 민족문학을 주창한 이 글은 신드롬을 낳았고 그는 일약 문화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그때 김명인은 “기층 민중이 변혁의 주체가 되기를 기대하며 학생운동이 기꺼이 그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반파쇼학우투쟁선언’에서 꿈꾼 새로운 세상이 비로소 목전에 다가온 느낌”이었고, 자신이 “마치 점령군처럼, 혹은 완장을 찬 당 간부처럼 비평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1990년대 벽두의 현실 사회주의 붕괴와 분신 정국, 문민정부 출범 등 나라 안팎의 격변은 ‘위기와 구상’이 “객관적 현실 인식에서부터 오류를 안고 출발”했으며 “과학이라는 허울을 쓴 한갓 낭만적 에세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1983년 출소 직후. 김명인 제공
이후로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학문의 길에 들어섰지만 그것은 자신이 꿈꾸었던 혁명의 좌절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40대 중반이 지나면서는 자가면역 증후군과 대장암, 급성 패혈증 등을 차례로 거치며 신체적·정신적 쇠약을 겪어야 했다. 2020년 9월25일 서울중앙지법은 무림사건의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에 대한 재심을 통해 그에게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무림사건이 체제 전복을 꾀한 혁명적 실천이 아니라 민주화를 요구하며 벌인 여러 시위의 하나였다는 판단이었다. 자신을 반국가 사범이 아닌 “일개 시민”으로 공인한 이 판결을 받고 “묘한 이중감정”에 휩싸였노라는 그의 고백이 흥미롭다.
책 제목은 1979년의 비상계엄에 이은 군사 반란과 2024년 12월3일의 비상계엄을 가리키는데, “스물한살의 내란 때에 나는 울었고, 예순여섯살의 내란 때에 나는 웃었다”고 그는 쓴다. 혁명에 대한 꿈을 접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한 생각까지 그만둔 것은 아니라며 그는 “민주공화적 통치성의 확립,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로부터의 해방, 반공 냉전 체제 잔재의 극복, 그리고 기후위기에 대한 근본적 대응”을 네가지 당면 과제로 들었다. 하나같이 쉽지는 않지만, “2030 여성들을 주축으로 한 이른바 ‘응원봉 연대’”에서 “새로운 성격의 ‘혁명 정신’을 발견했다”는 결말은 그럼에도 희망을 향해 열려 있는 듯하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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