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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이현이 돌아왔다. '우리가 녹는 온도' 이후 8년 만에 신작 산문과 함께. 그가 선보인 '어린 개가 왔다'는 웹진 채널예스에 연재한 글을 모은 책으로 보호소에서 어느 날 갑자기 데려온 믹스견 '루돌이'를 입양하며 겪은 이야기다.
정 작가는 이달 1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실제 겪지 않아서 모르고 살았을 것들, 모르고 살았겠지만 모르는지도 몰랐을 것들이 많았을 것"이라며 "(정신적 측면뿐 아니라) 물리적 측면에서의 삶의 지평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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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어린 개가 왔다' 표지. 한겨레출판 제공
정 작가에게는 사는 동안 몇 번의 전환기가 있었다. 술을 마시기 전후, 소설을 쓰기 전후, 운전을 하기 전후, 출산과 육아를 하기 전후. 그리고 그에게 가장 특별한 변곡점은 이 어린 개를 만나기 전후라고 말릴게임뜻
한다.
"개를 잘 몰랐고 무서워했고 큰 관심이 없었어요. 동떨어져 살았던 동물인데 구체적인 형태로 제 삶의 한복판에 들어왔어요. 매일 어린 개와 함께하면서 다른 시야가 생겼어요. 성장 서사 주인공이 된 기분입니다."
갑자기 삶에 들어온 어린 개와 관계 맺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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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작가가 1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반려견 루돌이의 입양 전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박시몬 기자
정 작가와 어린 개의 만남은 2022년 12월 가족들이 전남 구례군 보호소에서 검정색 털과 흰색 털이 섞인 3개월령 황금성배당줄
'바둑이'를 데려오면서 시작됐다. (이후 성탄절을 앞두고 떠오른 루돌프에서 착안해 이름을 루돌이라고 지었다) 두 딸이 입양을 강력히 원해 바둑이는 가족이 됐지만 정작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그였다.
준비 없이 데려왔다고 하지만 루돌이가 집에 온 이후부터 정 작가의 준비성은 남달랐다. 그는 "세상을 책으로 배우는 타입이라 반려견 와스탁
양육 관련 책을 닥치는 대로 사서 읽었다"며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구나 위로도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책이 모든 현실 속 문제를 직접 해결해줄 수는 없는 법. 루돌이가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이빨이 자라면서 간지러워 사람 다리만 보면 '무한 점프'를 해대던 시간, 처음 산책을 나선 순간 등 정 작가는 루돌이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가며 관계를 맺어 나가게 된다.
강아지가 아니라 '어린 개'로 부르는 이유
2022년 12월 입양 당시 루돌이의 모습. 정이현 작가 제공
강아지가 아니라 왜 '어린 개'라고 부르는지 물었다. 강아지는 '성견이 되지 않은 어린 나이의 개를 뜻하는 단어'인데 현실에서는 주로 몸집이 작은 성견이나 노견도 강아지라고 부르는 게 이상했다고 한다. '귀여운 강아지' vs '그냥 개'로 나눠진 건 아닌지 궁금증도 생겼다.
정 작가는 "루돌이가 올 때 '귀엽고 연약한' 강아지의 모습을 떠올렸는데 실제로는 '개'라는 종의 어린 개체구나라는 점을 압도적으로 느꼈다"며 "강아지는 막연하게 상상해봤지만 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제목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어린 개는 또 인생의 예기치 못한, 작지만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누구나 인생에서 사소한 듯하지만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만나게 된다는 의미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책에는 몸무게가 15㎏인 루돌이와 살면서 '반려견 프렌들리(친화적)라고 하지만 소형견에만 해당하는 이중적인 문화부터 중형견과 홀로 산책 나간 여성에 대한 느닷없는 폭력, 품종견에 대한 선호와 믹스견에 대한 차별까지 루돌이와 살면서 겪게 된 내용이 담겨있다.
정이현 작가가 1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최근 출간한 '어린 개가 왔다'를 소개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여자로 사는 게 쉽진 않지만 개 없이 다니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너무 많이 느끼고 있어요. 이유 없이 죄송한 마음도 들고, 입장을 거절당할 땐 속상하기도 하고요. 산책을 할 때 신경이 곤두서게 돼요."
정 작가는 지방에서 할머니와 사는 믹스견 '깐돌이'의 팬이다. 깐돌이 이웃인 '앞집 언니'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깐돌이의 일상은 '힐링 영상'으로 통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깐돌이와 이웃들이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며 "동네 사람들이 자신의 개가 아니어도 신경 써준다면, 많은 개들이 깐돌이처럼 더 안전망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한다"고 말한다.
루돌이가 온 이후 알게 된 '루틴'의 중요성
정이현 작가가 반려견 루돌이와 산책하고 있는 모습. 한겨레출판 제공
정이현 작가는 "예비 반려인들이 책을 보고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동물을 위한 입양이나 임시보호를 하게 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시몬 기자
4년 차 반려인인 정 작가는 이제 '프로 산책러'가 됐고, 매일 밥을 주고 산책을 나가고 글을 쓰는 '루틴'(일상에서 규칙적·반복적으로 수행되는 행동)이 생겼다. 그에게 루틴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면, 루돌이가 온 이후에는 그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한동안 작품을 내지 않은 배경에 대해 "출간하는 게 무섭기도 했고, 쓰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걸으니 조금씩 원고를 쓰게 됐고 어느새 결과물이 쌓이게 됐다는 것이다.
"연재를 했기 때문에 원고를 차곡차곡 모아 책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루돌이와 산책하는 과정과 너무 똑같아요. 루틴을 잘 지키지 못하면 결국 다른 일도 못 한다는 걸 이제서야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그는 올해 안으로 9년 만에 소설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