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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공기처럼 익숙해서 예기치 않은 일로 쉽게 깨져버리거나 박탈당했을 때야 비로소 그 존재감을 소중하게 느끼게 된다. 계절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김없이 제 할 일을 해내지만 인간은 상황에 따라 어떤 계절을 영영 빼앗기기도 한다. 코로나 감염병에 따른 봉쇄 조치가 내렸던 2020년의 봄은 전 지구인에게 불확실한 계절이었다. 고립과 불안이 기존의 일상을 밀어냈고, 인류는 마스크 안에 표정을 숨긴 채 불신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소설 속 화자는 노년의 소설가로 불확실한 그해 봄에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고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 확 쉐보레 신도 사라졌다. 친절했던 이웃은 차갑게 돌변했고 산책길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기침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모든 게 흐트러져 버린 그때 해외에 나갔다가 발이 묶여 버린 지인이 집에 홀로 남은 자신의 앵무새 ‘유레카’를 돌봐달라고 부탁해 온다. 마침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뉴욕에 왔다가 갈 곳이 없어져 버린 은퇴한 호흡기 내과 전문의에게 월세자금대출 자기 집을 내주고 ‘나’는 앵무새가 있는 지인의 집에 들어간다. ‘나’는 앵무새가 생각보다 지능이 높고 이틀 이상 혼자 두면 안 된다는 사실까지 새롭게 알게 된다. 그렇게 서서히 앵무새와 교감하며 유대감을 쌓아가던 중에 원래 앵무새를 돌보기로 고용되었다가 연락도 없이 사라져 버린 무책임한 지(Z)세대 대학생 베치가 불쑥 찾아오면서 반갑지 않은 동거가 시작된 원주 춘천 다. 베치는 이상주의자 에코 테러리스트에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부모와의 사이도 몹시 나쁘다. 소설은 젠더도 세계관도 세대도 완전히 달라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어떠한 접점도 없었던 두 사람이 봉쇄와 고립 속에서 앵무새를 사이에 두고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가를 작가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포항자동차담보대출 소설은 단순히 코로나 시대의 한 풍경만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설의 첫 문장 “불확실한 봄이었다”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의 서두에서 왔다는 사실이 암시하듯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은 의식의 흐름 기법에 많이 기대어 전개된다. 이때의 의식은 역방향으로 거슬러 가길 반복하며 기억의 조각들을 불러 모은다. 신기한 것은 소설 안의 화자가 코로나 저금리 기조 시국 한가운데서 인간관계의 여러 면모에 관한 기억을 불러올 때 우리 역시 소설 밖에서 우리의 어떤 시절들을 떠올린다는 사실이다. 쓰기와 읽기는 이렇게 겹겹의 기억을 부르고 쌓는 연쇄작용을 낳으며 각자의 기억 단층을 형성한다.
우리에게도 불확실한 봄들이 있었다. 5년 전 감염병이 불러온 을씨년스러운 봄도 있었고 겨울과 여름 사이에 끼어 봄이 온 줄도 모르고 광장에서 놓쳐버린 안타까운 봄도 있다. 작가는 이토록 불확실하고 불안했던 계절이야말로 잊지 말고 반복해서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다 지난 일이니 그만 잊으라는 모진 말을 향한 반박으로도 읽힌다. 우리에게도 기억하고 계속 말해야 할 봄들이 있다. 시그리드 누네즈도 책 첫머리에 마르케스의 문장을 빌려와 “삶은 우리가 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는 것, 우리가 이야기하기 위해 기억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이주혜 소설가·번역가
이주혜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