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인 공포에 떨게 한 도쿄 앞바다에 뜬 흑선 4척● 열여덟 검도 수련생 사카모토 료마의 깨달음● ‘존왕양이’ 세력에 맞서 일본 근대화 앞장선 료마● 근대국가 기틀이 된 선중 8책·신정부 강령 8책● 막부와 천황 중재, 사상·인적 연결로 유신 토대 만들어● 국제 정세 파악 못한 고종과 중신들…역사 되풀이돼선 안 돼



사카모토 료마. 위키피디아



1853년 6월 미국의 동인도함대 사령관 페리(M C Perry) 제독은 500여 명이 승선한 흑선(?船·Black Ships) 4척을 이끌고 일본의 에도(동경)만에 나타나 도쿠가와막부에 개방을 요구했다.알라딘꽁머니
거절당하자 함포 사격을 가했고, 일본에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군복을 입고 대포와 무기로 무장한 상태에서 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했다. 국민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으나 막부는 속수무책이었고 무기력하게 대처하다가 거센 비난을 받았다.?

당시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1836~1867)는 18세에 불과했는데 고향인 도사번(土그물망챠트
佐藩·현재의 고치현) 도장에서 검도를 수련하고 있었다. 이듬해인 1854년 흑선이 두 번째로 일본에 나타났을 때 료마는 검술 수련을 위해 동경에 머무르고 있었다. 흑선의 등장은 일본 전역이 크게 동요한 사건이었기에 료마는 도사번 내의 상급 무사들이나 스승들로부터 흑선 소식을 접했고, 에도 검술 도장의 무사들이나 선배들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료마kodex 레버리지 주식
가 흑선을 직접 목격했을 가능성은 크지만 사실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이 승선한 흑선을 그린 그림. Gettyimage



흑선 사건으로 료마는 일본이 외세에 너무 약하다오션파라다이스3
는 데 충격을 받았고, 검술을 더 열심히 연마해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당대 다른 무사들처럼 처음에는 외세를 무력으로 몰아내야 한다는 존왕양이(尊王攘夷) 사상에 빠졌으나 곧 국제 정세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일본이 개방과 근대화를 통해 스스로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기의 무력 저항론에서 점차 근대화와 개국론으로 입장을 바꾼 혁신 전략가 료온라인야마토
마의 구상은 무기력한 막부 체제의 종식,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치체제 수립, 군사력 강화와 해군 창설, 외국과의 무역과 교류를 통한 국력 강화로 요약된다. 료마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이러한 구상을 짧은 기간(1863~1867)에 실행했고, 메이지유신 성공 6개월 전 1867년 암살자의 총에 의해 자신의 음력 생일날(11월 15일) 31세의 나이에 타계했다.?




에도막부의 창시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에도막부 시대 일본의 지배체제메이지유신 직전 일본의 정치 지배구조는 에도막부, 천황 조정, 270여 개의 번이 중심이었다. 에도막부(江?幕府)는 1603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川家康)에 의해 설립됐다. 에도막부는 쇼군(將軍)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였다. 최고 권력층은 막부의 최고 권력자이자 일본의 실질적 통치자인 쇼군, 쇼군을 보좌하며 국가 행정을 담당하는 원로 중신들인 로주(老中), 젊은 관리감독관인 와카토시요리(若年寄)가 있었다. 막부는 각기 다른 특정 업무를 담당하는 핵심 행정기관이 사무를 처리했다. 막부 자체에 직접 근무한 인원은 약 2만 명, 지방행정까지 포함하면 10만 명 이상이 막부 체제를 지탱했다. 에도막부 말기 일본의 총인구는 3000만~3500만 명 정도였다. 에도막부는 전국을 270여 개의 번(藩)으로 나눠 다이묘(大名·지방 영주)에게 다스리게 했다. 막부는 산킨코타이(?勤交代)라는 제도를 통해 다이묘들이 에도와 자신의 번에서 번갈아 지내도록 함으로써 다이묘들이 쇼군에 충성하도록 강요했다.

에도막부(1603~1868) 시기, 일본의 천황과 교토 조정은 형식적 권위를 유지했을 뿐 실제 정치적 권력은 막부가 장악하고 있었다. 천황과 교토 조정의 관리 체계는 천황을 필두로 황족 및 귀족(公家·구게), 조정의 최고 직위인 간바쿠(?白)가 있었다. 조정의 주요 직책에는 최고 직책인 다조칸(太政官)을 비롯해 좌대신(左大臣), 우대신(右大臣), 내대신(?大臣), 식부경(式部卿), 신기관(神祇官) 등이 있었다. 에도막부 말기 교토 조정에서 일한 인원은 1000~2000명 수준으로, 막부 관료 조직에 비해 매우 적었다. 번은 자체적으로 행정과 군사를 보유했지만, 막부의 강력한 감시 아래 운영됐다.
에도막부는 쇄국정책을 시행해 무역을 제한적으로만 허용했으며, 공식적으로는 막부 직할지(나가사키)를 통해서만 외국과 교역했다. 몇몇 번에 예외적으로 무역을 허용했는데 사쓰마번(薩摩藩)은 류큐왕국과의 무역이, 쓰시마번(?馬藩)은 조선과의 무역이, 마쓰마에번(松前藩)은 아이누 및 러시아와의 무역이, 나가사키는 막부 직할지로 네덜란드 및 중국과의 무역이 허용됐다.
세키가하라 전투(1600)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항복해 다이묘로 인정받은 몇몇 번은 에도막부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특히 조슈번(長州藩)은 막부 정치에 불만이 많았고, 사쓰마번은 전통적으로 막부에 반감을 가졌다. 도사번은 처음에는 막부를 지지했으나 막부의 부패에 반발해 점차 반(反)막부 노선으로 전환했다. 막부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조슈번, 사쓰마번, 도사번 출신 사무라이들이 결국 막부 반대의 중심에 서서 메이지유신을 추진하고 성공시켰다.?



1854년 미국 동인도함대 사령관 페리 제독이 미일화친조약을 맺을 당시의 모습. Gettyimage



우국충정 사무라이들의 치열한 논쟁과 투쟁?에도막부 말기(19세기 중반~1868년 메이지유신 전후), 미국을 비롯한 서양 국가들이 일본의 개방을 요구했다. 그러자 일본의 지배계급과 사무라이들은 크게 개국파(開?派), 존왕양이파, 공무합체파(公武合?派), 막부보수파(幕府保守派)로 나뉘어 격렬한 정치 논쟁과 무력투쟁을 벌였다.

개국파는 서양 문물이 일본보다 우수하며, 개방과 서구식 개혁을 통해 국력을 키워야 한다며 개방 및 근대화를 찬성했다. 주요 세력은 에도막부 지도부를 중심으로 사쿠마 쇼잔(佐久間象山), 가쓰 가이슈(勝海舟) 등이었다. 대표적으로 에도막부가 1854년 미일화친조약을 체결해 일본을 개방한 것, 1858년 다이로(大老)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가 불평등조약 체결을 강행하면서까지 서양과 무역을 시작한 것, 신식 해군과 군사력 강화를 위해 서양 기술 도입(네덜란드식 군사훈련, 서구식 조선 기술 학습)한 것 등이다.
존왕양이파는 천황 중심의 정치로 국가를 개혁하고, 막부를 해체해야 하며, 서양 열강을 일본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했다. 막부는 서양과 조약을 체결하면서 국가를 팔아먹었으므로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요 세력은 조슈번과 사쓰마번 내의 급진 무사들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사이고 다카모리(西?隆盛), 기도 다카요시(木?孝允) 등이었다. 대표적으로 1863년 조슈번이 시모노세키 해협에서 서양 함대를 공격했으나 패배한 것, 1864년 사쓰마번이 영국과 충돌한 것, 1866년 사쓰마-조슈 동맹을 결성해 에도막부에 맞선 것, 1868년 메이지유신을 주도하며 막부를 타도한 것 등이다.
공무합체파는 천황과 막부가 협력해 국가를 운영해야 하고, 막부를 폐지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하므로 점진적 개혁을 통해 서양에 대응해야 하며, 급진적 개혁이나 서양 배척보다는 실용적 외교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천황과 막부의 공존을 주장했다. 주요 세력은 막부 내부 개혁론자(이타쿠라 고즈케노스케 등)를 포함 사쓰마번(초기), 아이즈번(?津藩), 히코네번(彦根藩) 등 막부 측 개혁파 등이었다. 대표적으로 1862년, 사쓰마번과 아이즈번 중심으로 고메이 천황(孝明天皇·메이지 천황의 부친)과 막부의 연합을 추진한 것, 1863년 공무합체 정책으로 천황의 딸인 가즈노미야(和宮)를 막부 1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川家茂)와 결혼시킨 것 등이었다. 그러나 존왕양이파가 점차 세력을 확대하며 공무합체파는 영향력을 잃고 몰락했다.?
막부보수파는 도쿠가와막부가 일본을 지배해야 하며, 서양과의 외교도 막부가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존왕양이파의 반란을 강경하게 진압하고 서양과 전쟁을 벌이기보다는 현실적 개방이 필요하다며 막부 체제하의 개혁을 주장하는 등 강경한 막부 유지론을 펼쳤다. 주요 세력은 에도막부 핵심 세력(아이즈번, 쇼나이번, 신센구미 등)과 마쓰다이라 가타모리(松平容保), 오쿠보 이치오(大久保一翁) 등이었다. 대표적으로 1863년 사쿠라다 문 밖의 변(?田門外の?)으로 이이 나오스케가 존왕양이파 사무라이들에게 암살당하고, 1864년 금문의 변(禁門の?)으로 아이즈번과 막부군이 조슈번의 무사들을 교토에서 토벌했으며, 1868년 보신전쟁(戊辰??)으로 일부 잔존 세력이 신정부군과 싸웠으나 패배하고 도쿠가와막부가 멸망했다.?



가쓰 가이슈. 위키피디아



사카모토 료마의 관점과 활동사카모토 료마는 도사번의 하급 무사 출신으로, 초기에는 존왕양이파 성향이 강했지만, 이후 개국파와 존왕양이파 사이의 중도 개혁 세력을 지향했다. 점차 개국과 근대화를 지향하며 독자적 개혁 노선을 추구했다. 결국 사쓰마번과 조슈번을 연합하는 '삿조동맹(薩長同盟·1866)'을 성사시켜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유신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사카모토 료마의 정치적 입장과 활동을 살펴보면, 료마는 1862년 막부를 타도하고 새로운 일본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도사번에서 탈번했다. 번의 통제를 벗어나는 탈번은 막부 질서를 해치는 행위로 당시 처형·추방·감금을 당하는 중대한 범죄행위였다. 료마는 도사번을 떠났지만, 1864년 가쓰 가이슈의 도움으로 사면을 받아 다시 '도사번의 사람'으로 수용돼 일본 근대화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게 된다.?
료마는 존왕양이파 활동을 하던 쇼카손주쿠(松下村塾·요시다 쇼인이 운영한 학당) 무사들과 교류하며 존왕양이 운동에 가담해 막부를 없애고 천황 중심의 일본을 만들자는 생각을 품었다. 료마는 사쿠마 쇼잔의 "양이(서양 배척)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서양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사상을 접하고 개국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일본이 서양과 전쟁을 벌이면 패망할 것이라 판단하고, 서양식 해군과 무기를 받아들여 일본을 개혁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전환해 쇄국파에서 개국파가 됐다. 1865년 료마는 가메야마샤추(?山社中·일본 최초의 민간 해운사)를 설립해 무역을 통한 근대화를 시도했다.?



에도막부 시대의 사무라이들. Gettyimage



막부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협력이 필수라고 판단한 료마는 1866년 사쓰마번(사이고 다카모리)과 조슈번(기도 다카요시)의 동맹을 중재해 '삿조동맹'을 성사했다.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본래 적대 관계였으나, 료마의 중재로 연합해 막부를 공격하기로 합의했는데 이 동맹이 1868년 메이지유신의 발판이 됐다. 1867년, 막부를 무력으로 무너뜨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체하는 방안을 담은 '대정봉환(大政奉還)'을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제안해 실행함으로써 메이지유신의 길이 열렸다. 일본 역사상 최초의 무사 정권 가마쿠라막부(鎌倉幕府) 이래 675년 동안 통치하던 막부 시대가 대정봉환으로 막을 내렸다.


선중 8책과 신정부 강령 8책선중 8책(船中八策)은 에도막부 말기인 1867년에 료마가 도사번의 배 유가오마루(夕顔丸)를 타고 나가사키에서 효고(兵庫)로 가는 길에 작성한,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데 필요한 구상이다. 모두 여덟 가지 정치 구상으로 "①천하의 정권을 조정에 봉환(奉還)하며, 모든 정령(政令)은 조정에서 내릴 것 ②상하의정국(上下議政國·국회)을 설치하고 의원을 두며, 정무에 관한 모든 사항은 공의(公儀)에 부쳐 결정할 것 ③재능 있는 구게(公家·궁정 귀족), 제후 및 천하의 인재를 고문(顧問)으로 삼아 관작(官爵)을 수여하고, 기존의 유명무실한 관직을 폐지할 것 ④외국과의 교섭은 널리 공의를 모아, 새로이 정한 합당한 규약에 따라 수행할 것 ⑤고래의 율령(律令)을 절충하고, 새로이 무궁한 대전(大典)을 선정할 것 ⑥해군을 확장할 것 ⑦어친병(御親兵)을 두어 제도(帝都)를 지키게 할 것 ⑧금은물화(金銀物貨)의 가치는 외국의 가치와 일치시킬 것" 등이다.

선중 8책은 천하의 형세를 살피고 정한 것으로 공포됐다. 네덜란드어와 영어를 배우고 서양인들을 만나면서 서양의 제도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8책을 제시한 것에서 료마의 구상이 뛰어남을 읽을 수 있다.?
선중 8책에 영향을 받아 작성된 신정부 강령 8책(新政府綱領八策)은 료마가 게이오 3년(1867) 11월에 제시한 것으로, 메이지유신 이후의 신정부 설립을 위한 정치 강령이었다. 8책의 내용은 "①일본 국내의 유능한 인재들을 초빙해 참의(參議)로 임명할 것 ②유능한 제후들을 선발해 조정의 요직을 맡기고, 무의미한 직책은 폐지할 것 ③외국과의 교류는 심사숙고한 후에 실행할 것 ④법령과 법규를 제정하고 새로운 법전에 하자가 없다는 판단하에 승인되면, 제후들은 이를 준수함과 동시에 이를 보완해 나가도록 할 것 ⑤상하 양원으로 구성된 의사원을 설치할 것 ⑥육군성과 해군성을 설치할 것 ⑦어친병(御親兵)을 설치할 것 ⑧황국의 금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국제 관행과 일치되도록 할 것 등이다.?
이들 8책에는 다음과 같은 다짐도 들어가 있다. "위의 내용을 사전에 2, 3명의 안목 있는 자들과 의논해 정하고 제후회맹의 날을 기다리고…OOO 스스로 맹주로 나서서 이 안을 조정에 올려 천하 만민에게 공포하며…강하게 저항해 무례하게 공의를 어기는 자는 단연히 정토하며 권문귀족이라도 예외가 없다." 신정부 강령 8책과 선중 8책의 가장 큰 차이는 "? OOO 스스로 맹주로 나서서, 이 안을 조정에 올려 천하 만민에게 공포하며?"에서 OOO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읽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름을 넣어서 읽을 수 있게 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정부 강령 8책은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거쳐 근대국가로 발전하는 기틀이 됐다.?

사카모토 료마에 영향을 준 사람들사카모토 료마는 1836년 11월 15일 오늘의 시코쿠(四?) 남부 고치현(高知?)의 도사번에서 상인이면서 무사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비교적 부유하게 자랐다. 사카모토 료마의 친어머니 사카모토 고(坂本幸)는 료마가 12세 되던 해인 1846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친어머니가 사망한 후, 셋째 누나인 오토메(乙女)가 사실상 어머니 역할을 하며 료마를 돌봤다. 오토메는 대담하고 강한 성격으로 료마에게 정신적 지주가 됐으며, 료마의 지지자이자 조언자로서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된다.?

친어머니 고가 사망한 뒤, 새어머니로 온 이요(伊與)는 료마와 그의 형제들을 돌보며 가정의 중심 역할을 맡았다. 이요는 예절과 규율을 강조하며 료마에게 매우 엄격했다. 이요는 예를 들어, "예절이 밝지 못하다"는 이유로 료마를 객실에 무릎 꿇려 앉히고 끼니를 굶기는 일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료마는 새어머니와 갈등보다는 조화를 이루며 성장했다.?
이요의 엄격한 교육은 후일 료마의 책임감과 자기 절제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했고, 정치적 활동과 리더십에도 긍정적 밑거름이 됐다. 또한 이요의 엄격함은 료마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정신적 강인함을 키우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는 그가 정치적 중재자 역할을 하거나, 막부와 번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휘된 결단력과 인내심의 밑바탕이 됐다.?
사쿠마 소잔과 더불어 료마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가쓰 가이슈이다. 탈번한 료마는 1862년 에도로 가서 개화파이자 막부 해군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직책에 있던 가이슈를 만나 그의 지식과 견문, 논리적 설명에 탄복해 그의 제자가 된다. 료마가 가이슈를 찾아간 것은 그가 개국파의 선봉장이었기에 사실 그를 암살하러 간 것이었다. 료마는 정치적·사상적 스승인 가쓰 가이슈를 평생 스승으로 모셨다.
가이슈로부터 서양 문물을 배운 료마는 양이보다는 개화를, 번이라는 작은 지역보다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료마는 가이슈의 도움으로 1863년에 도사번 번주를 만나 자신의 탈번에 대한 죄를 사면받았다. 료마는 가이슈를 도와 고베(神?) 해군 훈련소 설립에 참여했다. 양이론이냐 개국론이냐 하는 차원을 초월해 부국강병의 필요성을 간파했고, 개혁파가 에도에 무혈입성한 것은 막부 측의 가쓰 가이슈와 개혁파 측의 사이고 다가모리가 협상하고 설득한 결과였다.

비정규 교육과정 통해 배운 외국어와 서양 학문료마는 공식적인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에 정규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다. 10대 후반에는 검술 도장에서 수련했는데 1853년 료마는 도사번의 검술 도장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검술 연마를 시작해 1854년엔 에도(도쿄)로 유학해 지바 도장에서 호쿠신잇토류(北辰一刀流) 검술을 수련했다. 료마는 20대 초반 이후 사설 학문소(私塾)에서 유학하며 정치·외교·군사에 대한 지식을 쌓고, 서양식 군사학과 정치 이론을 접하며 서양의 무기·해군·무역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사설 학문소는 개인이 운영하는 교육기관으로, 학교(관학)와 달리 특정한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형식의 교육기관이다. 료마가 다닌 학문소는 '종산사(象山塾)'로, 이곳은 일본의 사상가이자 무사였던 사쿠마 쇼잔(佐久間象山)이 운영하던 사설 학문소다. 사쿠마 쇼잔은 서양 기술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일본의 근대화를 주장한 사상가로, 그의 학문소에서는 난학(蘭?·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서양 학문), 서양식 군사전략, 과학기술(서양식 포술, 증기선 운용 등), 국제 정세, 병학(兵?·군사학), 서양식 군대 조직과 전술, 근대식 무기 사용법 등을 가르쳤다. 료마는 이곳에서 서양의 선진 군사 전략을 배우고, 일본의 봉건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사상을 키워갔다. 후에 그는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해군을 창설하고, 일본 근대화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사카모토 료마는 난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1862년 에도에서 네덜란드어와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료마는 1863년부터 서양식 해군 기술을 배우기 위해 나가사키로 이동했는데, 네덜란드인과 직접 교류하며 네덜란드어를 배웠고, 글로버 상회(Thomas Glover·스코틀랜드 상인)와도 접촉하면서 영어도 접하게 됐다. 1865년 료마가 나가사키에서 가이엔타이(海援隊)라는 일본 최초의 민간 해군 조직을 결성해 활동함에 따라 외국인들과 접촉하면서 기본적인 영어 회화를 익혔다.



유럽 의상을 입은 일본 군인들. Gettyimage



일본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료마료마가 지금은 일본 역사에서 대단히 유명한 인물이지만, 료마의 생애가 에도막부의 공식 문서에는 기록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가 일본의 정사(正史)에 등장하게 된 것은 1900년대 초반으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메이지천황기(明治天皇紀)'에 따르면 러일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메이지 왕비의 꿈에 료마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꿈에 한 장사가 나타나 왕비에게 "신(臣)은 사카모토 료마라고 하며 제가 우리 해군을 수호할 것이니 안심하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료마가 지금처럼 '난세의 인물'이자 '구국의 영웅'으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역시 1904년 '황후의 기이한 꿈' 사건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서른한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죽었기에 생전에 큰 공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겨를이 없었고, 메이지유신 후에도 오랫동안 조명을 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료마가 사쓰마나 조슈처럼 명문 번의 인물도 아니었고, 막부 관리도 아닌 데다 메이지 정부의 요직에도 오르지도 못했기 때문에 메이지유신 후 주류 세력의 역사 기록에서 소외됐다.
사실 미국 역사학자 잰슨(Marius B Jansen) 교수가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유신'(Sakamoto Ry?ma and the Meiji Restoration·1961)란 저서에서 료마를 '역사적 인물'로 조명하면서 료마가 역사적 매개자(mediator) 그리고 삿조동맹을 이끌고 막부와 천황 사이를 중재한 조정자(mediator)로 부각시킨 후에야 일본 내에서 사상과 인적 연결을 통해 유신의 토대를 만든 핵심 인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사카모토 료마는 인간을 좋아했다. 평생 누군가를 미워해 본 적이 없고, 적으로 삼았던 막부조차 여유를 가지고 포용하려 했다. 료마는 일본에서 실시된 '일본 역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 '총리로 가장 적합한 인물' 등의 여러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해 왔다.?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일본 1000년 역사인물 여론조사'에서 2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3위 도쿠가와 이에야스, 4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5위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6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앞서 료마는 1위를 차지했다. 아사히맥주가 2010년에 '함께 술을 마시고 싶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1위 사카모토 료마, 2위 오다 노부나가, 3위 쇼토쿠 태자(聖?太子), 4위 히미코(卑?呼, 3세기경 여왕), 5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차지했다. 2019년에는 일본 10~60대 남녀 1만2000명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 순위에서 1위 오다 노부나가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료마가 일본 국민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62년 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가 쓴 '료마가 간다(?馬がゆく)'라는 장편소설을 통해서였다. 작가 료타로가 역사적 사실과 허구인 소설은 다르다고 설명했지만 독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리만족을 느꼈다. 2010년 1월까지 2400만 부가 팔렸다고 하니,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위기에 처한 일본을 구한 구세주 사카모토 료마의 좌우명은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였다. 놀라울 정도로 유연한 두뇌와 강한 인내력이 뒷받침된 실천력으로 일본을 '세탁'하고 근대라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연 평화적 혁명의 투사였다. 그가 메이지유신을 통해 중앙집권적 근대국가의 발판을 마련한 메이지유신의 성사를 이끈 기간은 고작 4년(1863～1867)에 불과했다.
료마는 일본의 부국강병을 위한 전략을 구상하고 개혁 이후의 정치체제를 고민했다. 료마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깨끗이 포기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개방적 사고를 지녔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관계없이 한번 선택한 일은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사물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었으며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았다. 료마는 우수한 인재들과 만나서 자신의 의지를 밝히고 관철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계획을 발전시켰다. 료마의 진면목은 그의 부드러운 겉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대업을 위해 목숨을 걸고 헌신했다는데 있다.?
료마는 짧은 생을 살다 갔으나 역사적 전환기에 있던 일본이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명이 무엇인지 등을 확실히 알고 실천한 인물이다. 료마는 아시아의 변방이자 봉건국가인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단행해 아시아에서 최초로 근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일본이 근대화를 통해 세계 중심 국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료마의 지대한 공헌 덕분이다.?
료마의 위대함은 근왕이냐 좌막이냐, 또는 개국이냐 양이냐 하는 국론분열의 와중에서 혁명에 이르는 전략 구상과 혁명 이후의 정치체제에 대해 완벽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는 데 있다. 료마는 서책과 자료에 의지하지 않고 천부적 육감과 정보에 의지해 다가오는 근대 자본주의 경제를 예측하고 있기도 했다.?
료마는 막부와 벌인 내전에서 앞장서 전투에 나간 적도 없다. 그렇다고 선 굵은 정객이라고 칭하기에는 그의 생애가 너무 짧아 무엇인가 부족한 면이 있다. 그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역사적 전환기에 있던 일본이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인물이다. 전환의 시대를 맞아 일본에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한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료마가 많은 일본인으로부터 여전히 존경받는 또 다른 이유는 료마의 보잘것없는 출신 성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료마는 비교적 부유한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하급 사무라이 출신이었다. 료마는 상급 사무라이들이 싣는 게타(下?)가 아니라 짚신(草鞋)을 신어야 하는 하급 무사였다. 당시 신분 차별이 심했던 무사 생활을 하면서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고 나아가야 할 길을 앞장서서 걸었다.?

조선에서는 상상도 못한 메이지유신일본은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에 의해 강제로 개항했지만, 메이지유신을 단행해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에도막부가 무너지고 천황 중심의 근대국가로 바뀌면서 일본의 정치·경제·사회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 배후에는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주인 요시다 쇼인, 메이지유신을 구상하고 실행한 사카모토 료마, 그리고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문명인으로 전환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라는 걸출한 3명의 하급 사무라이가 있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과 더불어 근대화를 통해 강대국으로 치닫고 있을 때 조선의 고종과 지도자들은 이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물론 조선도 서양 문물을 처음으로 접한 유길준이나 후쿠자와 유키치의 지도하에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같은 개혁파가 있었지만,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조선은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개혁과 근대화를 이루지 못해 주권을 빼앗겼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조선의 기득권층은 그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친일파·친청파·친러파로 자리만 바꿨을 뿐 근본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비주류가 주류로 바뀌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막부에서 천황제로 권력 체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비주류가 주류로 올라섰고, 인재도 신분보다 능력에 따라 발탁하는 등 사회가 변화했다.
다른 하나는 당시 조선에는 조선이 나아갈 길을 제시할 만한 계몽가나 사상가가 없었다. 많은 사상가는 권력에만 눈이 멀었다. 우리에게는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사상가나 이토 히로부미 같은 정치인이 없었다. 당시 조선에 그와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조선도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역사의식이 있는 선각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가르치고, 가르침을 정성껏 이어받은 후손들이 합직해 일궈내는 역사 과정이 결코 수월하지 않았을 터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옳은 방향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는 지혜를 공유했다. 반면 조선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 함께 이루는 전통을 확립하지 못했다.
당시 조선에는 멀리 보는 선각자가 없었다. 대부분 자신의 공명(功名)에 관심이 있었지, 자신을 희생해 사회의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지도자가 없었다. 문제는 문제를 아는 선각자가 있더라도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물줄기를 바꿔놓는 역사의 변화가 초래되지 않는 데 있다. 사회가 수용해야 하고, 함께해 주는 인재들이 존재해야만 선각자의 웅지가 나래를 펼 수 있다. 우리는 모래알 민족이었고, 사색당쟁의 DNA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민족이다.
일본의 경우 1853년 미국 페리함대가 일본에 왔을 때 선각자들이 세계화의 기치 아래 일본 자체의 개혁을 주장하고 각고의 노력을 경주했다. 이에 반해 조선에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알고 대응 방안을 구상한 선각자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선각자도 아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리 유지를 위해 마구잡이식 개혁을 쉰 목소리로 외쳐대고 있다. 한국에서는 역사가 되풀이됐고, 지금도 역사가 되풀이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최광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석좌교수·前 보건복지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