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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점의 한구석에서 작고 얇은 동화책 한 권을 발견했다. 표지에 그려진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낙엽을 지그시 들여다보던 한 소녀가 떠올랐다.
2년 전, 특수학교에서 사회복무를 하던 나는 열 살쯤 돼 보이는 그 소녀와 처음 만났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빨간 낙엽을 찾으세요!"
가을 햇살이 비추는 정원. 바닥을 오색으로 물들인 낙엽 더미. 선생님의 신호에 맞춰 아이들은 앞다투어 낙엽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한편, 소녀는 다른 아이들처럼 낙엽을 마구 들추거나 발장구를 치지 않았다.
이른 새벽부터 교문 앞의 낙엽을 쓸어 모은 선생님의 노고를 아는 듯 낙엽을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소녀의 눈은 외환노조 웃고 있지 않지만, 입꼬리가 누운 초승달보다 아름다운 걸 보아하니 지금 이 순간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는 듯하다.
작고 마른 손가락이 바스락거리는 낙엽 사이를 부드럽게 지나간다. 소녀는 낙엽 한 장을 조심스럽게 집어 손바닥 위에 살포시 올려놓는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낙엽을 한동안 지그시 바라본다. 승리를 예감한 소녀의 입은 잔물결처럼 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랑인다.
아쉽게도 노란 낙엽이었다.
소녀는 시각장애가 있다. 색을 어느 정도 구분하긴 했지만, 낙엽의 색 차이는 헷갈리는 눈치였다. 낙엽을 바라보는 소녀의 아쉬운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그날 이후, 소녀를 더 알고 싶었던 나는 점심시간이면 일부러 소녀의 교실을 찾아가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눴다. 소녀는 낯 특수관계자 을 가려 처음엔 말수가 적었지만, 조금씩 내 말에 조용히 웃어주었다. 소녀가 웃을 때면 내 마음이 환해졌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사회복무가 끝날 무렵엔, 어느새 소녀의 존재가 내 일상 속 작은 기쁨이 돼 있었다. 소집해제를 하고 나서도 가끔 찾아가긴 했지만,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 어느새 발길이 자연스레 뜸해졌다 별내지구미분양아파트 . 그래도 소녀는 줄곧 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에 읽은 자전 동화 <엄마, 내가 자전거를 탔어요!>의 주인공 '미유키'와 내가 봤던 그 소녀는 묘하게 닮았다. 나는 낯선 이야기에서 기억 속 풍경을 더듬으며 책장을 넘겼다.
캐피탈할부이자
▲ ?시각 장애아 미유키의 자전 동화, 그림 카리노 후키코, 『엄마, 내가 자전거를 탔어요!』
ⓒ 베틀북
"뭐든지 만지게 하고, 뭐든지 직접 해 보게 할 거야."
볼펜만 한 키에 이쑤시개처럼 가녀린 손가락. 500그램밖에 안 나가는, 미숙아인 채로 태어난 미유키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미유키의 엄마는 미유키가 뭐든지 직접 하도록 내버려둔다. 미유키가 공원에서 넘어져 흙범벅이 되어 울어도, 계단에서 미끄러져 움직일 수 없을 때도 도와주지 않는다.
곳곳에서 불쑥 나타나는 시련들이 미유키를 괴롭힐 때마다,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묵묵히 응원한다. 딸아이가 혼자서도 세상을 살아갈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함이다.
그러다가도, 미유키의 장애를 놀림거리로 삼아 미유키를 놀리는 남자아이에게는 크게 화를 낸다. 거기엔 장애아의 부모가 깨달은 단호한 모성애가 담겨있다.
"이 아이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우리가 마음을 써주어야 해, 알겠지?"
어느날,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려 보고 싶다"는 미유키. 자신도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미유키의 말에, 모녀는 곧바로 운동장으로 향한다. 보조 바퀴도 없는 자전거를 끌고 간다. 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가혹한 시련으로 아이를 끌고 간다.
"엄마, 왜 잡아 주지 않는 거예요? 아파 죽겠단 말예요!"
넘어진 미유키가 엄마를 올려다봐도, 엄마는 "빨리 일어나!"라고 단호하게 말할 뿐이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 팔꿈치에서 피가 나도 미유키는 포기하지 않는다. 엄마의 매정함에 오히려 오기가 생긴다.
"꼭 타고 말 테야. 아무리 상처가 나도 자전거 타는 걸 꼭 보여주고 말 거예요."
엄마의 양육 방식이 통한 셈이다.
"엄마, 탔어요. 내가 자전거를 탔어요!"
수없이 넘어진 끝에야 미유키는 제 길을 찾는다. 몸이 기억한 균형이 미유키를 올곧게 앞으로 밀어낸다. 자전거는 바람을 가르며 운동장을 크게 한 바퀴 돈다.
▲ ?자전거는 바람을 가르며 운동장을 크게 한 바퀴 돈다. 자전거와 아이들(자료사진).
ⓒ berkankucukgul on Unsplash
엄마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미유키를 끌어안는다. 포기하지 않는 법을 익힌 미유키는, 앞으로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씩씩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자전거 타는 법을 한번 배워 놓으면 평생 몸이 그것을 기억하는 것처럼, 얄궂은 삶으로부터 배운 몸과 마음을 달래는 방법을 미유키는 기억할 것이다.
한편, 그러한 삶의 한 발짝 뒤에는 미유키의 엄마가 서 있다. 미유키의 자전거는 묵묵히 딸을 믿어준 엄마의 사랑 위를 달린다.
책 <엄마, 내가 자전거를 탔어요!>는 고등학생이 된 미유키가 직접 쓴 자전적 동화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써 내려간 글에는 미유키가 느꼈던 엄마의 묵묵하지만 섬세한 양육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따스한 색감의 삽화는 읽는 이의 마음을 은은하게 울린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동화책을 덮고, 낙엽을 지그시 바라보던 소녀를 떠올려본다. 가끔 소녀는 아침에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뾰로통해 있었다. 등굣길에 어머니에게 혼나고 한바탕 울고 온 것이다.
소녀의 어머니도 책 속 미유키처럼 단호한 분이다. 소녀가 밉게 굴면 호되게 타이르고, 떼를 쓰고 울면 쉬이 달래지 않고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묵묵히 기다린다. 소녀의 어머니가 보여준 단호함은, 동화 속 미유키의 엄마가 보여준 사랑의 방식과 닮았다.
어머니들은 말없이 아이들의 곁을 지킨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한 걸음 물러서서 지켜보는 데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고, 그 용기는 아이를 향한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다. 신뢰의 침묵이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팔꿈치에서 피가 나도,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고 떼를 써도,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삶을 온몸으로 겪도록 기다린다. 그렇게 아이들은 상처 속에서, 울음 속에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간다.
소녀와 친해지고 이해하고 싶었던 마음은, 소녀를 곁에서 조용히 믿어주는 부모를 보게 했다. 재촉하지 않고, 쉽게 도와주지 않고, 스스로 세상을 겪도록 기다리는 사랑. 그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이해라는 것을 알았다.
덧붙이는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