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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함영님성
날짜 : 25-10-31
조회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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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은 또 웃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이미상 작가의 소설이니까. 웃음을 유발한 그 대목들이 때로 칼을 품고 있으니까. 구밀복검 빗대어, 구밀맥락검이랄까. 한마디 한 문장엔 꿀이 발라져 있으나, 맥락 안에 날이 있다. 숨겨둔 검날이 세계 쪽이든 작가 자신을 향하든 중요치 않아 보인다. 굳이 가르자면 후자에 가깝다. 칼은 글과 문학의 윤리, 그렇게 작가 자신을 겨눈다. 작중 글 쓰는 자의 이상적 도정이 이렇게 ‘선언’된다.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존경받지 못하고, 남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무시당하므로” “먼저 자살한 뒤 살해하라.” 한국통신요금
단편 소설 ‘셀붕이의 도’는 작가 이미상의 세번째 단행본이다. 놀라운 신예의 출현을 알렸던 첫 책 ‘이중 작가 초롱’ 이후 올해 단편으로만 2종을 펴냈다. 8편 단편집과 단편 단행본들이 한 권으로서 같은 무게일 순 없다. 다만 ‘셀붕이의 도’에는 동떨어지는 사연들이 압착되어 있다. 억지의 혐의를 눙친 채 동닿기 어려운 인물들을 연결하고 금리인하 영향 있으니, 2022년 첫 책 출간 때 한겨레 인터뷰에 밝힌 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불러내고 담고 싶은 마음”을 담은 필명 ‘이미상의 도’다.
일단 웃고 보자. 하나의 단편에서 인물들은 삼십대와 오십대, 칠십대로 삼분된다. 갓 30대가 된 중수는 갤러리 생활을 어떤 사건 뒤 청산하고 이제 면도 동호회 활동에 매진 중인, 백수다. 그 시절 상가전세금담보대출 이 선연하다. 매일 선언문을 올리는 온라인 게시판에서 중수는 일기 따위로는 불가한 “자신을 큰사람으로 느끼게 만드는 웅대함”을 맛보곤 했다. 일기란 게 “배꼽을 보며 쓰는 글” 아닌가. “고개를 깊이 숙여” 배꼽에나 대고 “중얼대는”. 선언문은 “턱을 들고 군중을 향해” “수천, 수만개의 심장을 녹여 거대한 하나의 에너지로 만들어 폭발토록 만드는”, “정신 불법중개수수료 의 대장장이”다. “선언문을 쓰고 나면 백만 군중 앞에서 목 놓아 외친 듯 목에서 기분 좋은 따끔거림”은 물론 “피 맛까지” 돌아 백수 중수를 하루하루 “새사람으로 만”드는 것.
중수와 같이 몇 안 되는 회원들은 비자발적 독신자(Involuntary celibate), 즉 ‘인셀’(Incel)이다. 남들이 서구의 대량 총기 난사범들이 인셀 맞이하였다 이었단 식-게다 난사범들은 범행 전 선언문도 쓴다-으로 모욕할 때 모름지기 자신들이 먼저 인셀이라 자신들을 불러 “무기를 장난감으로 격하”시키자 하니, 이것이 선언문 쓰는 자들의 너른 품이다. “응, 다음 인셀” 한마디로 한편의 사자후와 명분을 가볍게 튕겨내거나, “성교를 하지 못해 흘러나온 분비물, 갈 곳 잃은 정액이 뭉쳐진 뿌연 몽정 같은 것”이라고 싸잡는 이들이 있긴 해도 말이다.
중수의 외사촌 누나가 미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이룬 것 없이 귀국한 30대 중반 백수. 중수와 미히의 엄마들 자매는 그들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친정엄마 김활녀를 서로 챙긴다. ‘모자란’ 중수가 돌봐야 한다는 이가 중수 엄마고, ‘실패한’ 미히가 돌봐야 한다는 이가 미히 엄마다. 남자 전문 요양사를 입주시켜 매달 450만원씩 지출하는 활녀가 딸들은 무섭다. 결국 사촌 남매를 함께 김활녀의 아파트에 들여앉힌다. 여기에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의연히 독립적 여생을 영위하려는 70대 후반 노년의 서사가 맞물린다. 수영장에서 똥 싸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활녀 친구 정숙의 처연한 이야기까지.
돌봄을 명목 삼아 활녀의 집에 들어간 중수 미히 백수가 술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마신다. 외할아버지의 유산이다. 선언문으로 새사람이 되(어간다고 보)는 중수처럼, 미히 또한 글이 전부다. 미히의 대사는 다시 문학의 풍속과 윤리를 겨눈다.
“미국에서…조기 유학생들이 인생을 역전하려고 요새 제일 많이 하는 게 뭔지 알아? 소설 쓰기야. 비극적인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소설이 잠시 잠깐 진하게 유행이라 다들 한국에 있는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려.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참신한 고통의 세부를 건지려고. 먼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고문을 당한 적이 있느냐고 묻고… 엄청난 고학력의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이 역사소설을 쓰는 게 분한데 그렇게 쓸 자신은 없으니까 실화 기반 스토리로 가려는 것이지.”
미히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외할아버지에게 작고 전 ‘가해’의 기억을 추궁하다 내쫓겼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활녀와 정숙에게 “더 옛날이야기” “더 아픈 이야기”를 조르고 있으니, 책 읽는다는 이는 줄어도 글 쓰겠다, 책 내겠다는 이는 가득한 시대, 웃고 보기만은 어려운 ‘문도’의 이야기가 곧 ‘셀붕이의 도’다.
기발하게 얽힌 풍자 풍속극은 소재 형식 구분 없이 ‘단 한 편’씩 조각조각 세계의 이야기를 구성한다며 2023년 시작한 위픽 단편 시리즈의 100번째로 제격이겠다. ‘인간은 드러내는 동물’이란 전제에서 작가 자신을 겨눔으로써 세계를 겨누는 칼이 되어, 소재 형식 너머 글과 문학의 윤리, 태도를 묻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억울할 건 배꼽 냄새 난다는 일기 말곤 없다.
셀붕이의 도 l 이미상 지음, 위즈덤하우스, 1만3000원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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