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방송(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3부 - 죽는 것보다 늙는 게 두려운’의 한 장면. 교육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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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최고 어른으로 아흔을 훌쩍 넘기신 작은할아버지 내외가 시골에 계신다. 할아버진 여전히 운전을 하신다. 면허 갱신을 위해 정기적으로 보건소에서 치매 검사와 신체검사를 받는데, 이는 할아버지에겐 생존과 자존심이 걸린 중대한 문제다. 자녀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 둘만 남겨진 시골에서 운전은 고립되지 않기 위한 필수 생존 수단이다 릴게임 . 만류하는 가족들에게 할아버진 “운전을 해 장이라도 봐야 할매와 내가 굶지 않고 살지 않겠냐”고 반문하신다. 그렇게 장을 봐 놓으면 오전에 요양보호사가 와서 음식을 해둔다. 할아버진 운전마저도 어려우면 구차히 살지 않고 집 뒤 마련해 둔 터에 바로 눕겠다고 하신다. 올해도 노인은 고립된 목숨이 되지 않으려 시력검사를 위해 안경 렌즈를 광나게 닦고, 치매 바다이야기5만 검사를 위해 뺄셈과 암기를 연습하며 면허 갱신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에 떨어지는 날이 쓸모가 다해 삶에서도 퇴장하는 날이라 작정하시면서 말이다.
10년 전 아버지는 화가 잔뜩 나서 내게 전화했다. 격앙된 목소리에는 다니시는 교회에 대한 서운함이 잔뜩 배어 있었다. 만 70살을 넘겨 장로직에서 은퇴하게 되었는데, 그날로 에누리 없이 어떤 회 황금성릴게임 의에도 불러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은퇴 후 아버지의 유일한 여가는 교회 활동이었다. 모임과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에 예배 시간 꾸벅꾸벅 졸아도 교인들과 빠짐없이 악수하는 즐거움으로 일요일을 기다렸다. 그러나 장로 은퇴가 가져온 소외는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이후 두번째 겪는 ‘역할 없음’에 대한 트라우마였다. 연로하니 수고는 내려두라는 것은 배려가 아니 릴게임 라 내쳐지는 서글픔이었다.
그러고 보니 늙는다는 것은 늘 짐이 되어 무대에서 밀려나는 서글픔의 반복이었기에 고집스럽게 자존심에 목매게 했다. 시골의 작은할아버지도 그랬다. 지난 추석 선산에서 차례를 지낼 때 볕이 뜨거워 앉아 쉬시라 의자를 챙겨 드렸더니 고맙다 허허 웃으시면서도 꼿꼿하게 지팡이를 짚고 끝끝내 앉지 않으셨다. 사소한 챙김마다 메이저릴게임사이트 고맙다는 너른 마음 뒤에는 늘 자존심이 결연하게 서 있었다. 죽음을 늘 옆에 두고 사시는 할아버지의 자존심이 초월적이고 결연한 것이었다면, 아버지의 자존심은 익숙함보다 낯선 것들이 늘어가는 도시의 삶에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예민함 그것이었다. 한 예로 명절에 다 같이 극장에서 영화를 본 뒤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자며 아버지께 직접 키오스크로 주차비 정산을 해보도록 권했더니 버럭 역정을 내셨다.
나 역시 청춘을 떠나보내는 마흔 문턱에서 길을 잃었다. 삼십대 중반 전문의 시험을 끝으로 내 삶에 더 이상 시험은 없다는 해방감과 함께 시작한 종합병원 봉직의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매일 아침 진료실 책상 위엔 동료와의 경쟁을 부추기는 전날의 성과표가 놓여 있었다. 성과를 위한 경쟁을 살던 어느 날 시간을 팔아 돈을 사고 있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떠밀려나는 서글픔으로 불면증약을 드시던 아버지처럼 아들 역시 잠 못 이루는 날이 늘어갔다. 더 익숙해지면 영영 탈출할 수 없을 것 같아 대출금을 다 갚는 날 사직서를 냈다. 벌이를 멈추고 시간을 얻었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매일 걷고 달리면서, 언젠가는 읽겠거니 사서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던 책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마흔살이 되던 이듬해 인문학을 공부해 보겠다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박사학위 수여식 때 고향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셨다. 부자는 모두 멀어져 가는 청춘과의 관계 설정에 실패해 예민함으로 대화가 어려웠다. 어색한 식사를 하고 내려가는 기차 시간까지 제법 여유가 있어 난 불현듯 영화 한편을 보자 제안했다. 당시 나는 의과대학에서 죽음학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부모님과는 한번도 죽음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영화는 기업의 샐러리맨으로 살다 은퇴 후 위암 말기 진단을 받은 ‘스나다 토모아키’의 마지막 6개월을 담은 다큐멘터리 ‘엔딩노트’였다. 말기 환자로 살면서 그는 절망에 빠져 지내기보다는 10가지의 소박한 목표를 세우고 숨을 거두는 날까지 하나하나 실천하며 살았다. 기차역까지 모셔다드리는 차 안에서 우린 처음으로 서로의 예민함을 긍정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김형숙(순천향대 간호학과 교수)은 20여년 대형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죽음을 마주했다. 죽음은 늘 살아있는 자에게 삶의 길을 묻는다. 그는 병원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해 생명윤리를 공부하면서 죽음이 던진 질문에 답을 하듯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이라는 책을 썼다. 도시에서의 죽음은 병원 임종을 의미한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한국인의 생활 터전은 도시로 전환되었다. 1950년 25% 정도였던 도시화율은 반세기 만에 90%를 넘어섰고, 이제 한국인 열명 중 아홉은 도시에서 살고 병원에서 죽는다. 진화 과정에서 뭍으로 나온 물고기가 아가미로 숨 쉬는 법을 잃어버린 것처럼, 잘살아 보자 도시로 나온 한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는 법을 잃어버렸다. 나이가 들면 치료라는 이름으로 병원으로 옮겨져 연명 의료를 받다 죽는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김형숙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의 죽음 방식이 더 인간적이었다고 회고한다. 갑작스러운 위암 진단을 받은 그의 할아버지는 병원 대신 집에서 지내며 오래 앓지 않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홀로 남은 할머니는 서울 큰아들 집으로 가게 되었다. 어느 날 손녀가 다니는 학교를 찾아 나섰다 길을 잃자 치매 노인으로 생각한 행인이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자신의 말을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고 막무가내 파출소로 데려갔을 때의 노여움과 수치심을 할머니는 두고두고 하소연했다.
도시에서의 노인은 목소리를 잃는다. 노인은 도시의 속도와 질서를 방해하지 않도록 관리받아야 할 대상이다. 전통사회 노인의 지위는 달랐다. 그들은 마을 공동체의 서사를 기억하고 전승하는 지혜의 보고였다. 김형숙은 어린 시절 할머니는 마을 큰 나무에 얽힌 전설과 뒷산 무덤들의 주인,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의 사연 등 손녀의 호기심에 막힘없이 답해 주는 이야기꾼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도시에서 노인이 가진 서사는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며, 그들은 늘 생산세대를 위협하는 부양 부담으로 간주된다. 도시에서 늙는다는 것은 존중과 예우 대신 수치심과 분노의 경험을 수반한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방영된 교육방송(EBS) 3부작 다큐멘터리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가 떠올랐다. 말기 암 환자의 호스피스 돌봄이란 강줄기에서 출발했던 죽음에 대한 탐구 여정은 노화라는 태평양과 같은 보편적 화두로 나아간다. 그런 고민 속에 제작진이 던진 마지막 3부의 제목은 ‘죽는 것보다 늙는 것이 두려운’이다. 마치 우리의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은 의미심장한 폭로이다. 영상에서는 요양원을 탈출한 69살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반복되는 암 치료에 몸과 정신이 무너진 그의 돌봄을 딸은 안전과 보호라는 이름으로 요양원에 위탁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자존심 강한 그를 단지 통제해야 할 어린아이로 다뤘다. 자유와 자율이 없는 생활 속에서 창밖으로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던 그는 딸에게 간청해 집으로 돌아온다. 위험하고 불안하지만 단 하루라도 자율적 존재로 사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지역 공무원들의 우려에도 한사코 운전대를 놓지 않는 시골 작은할아버지의 자존심이 겹쳐 보였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문제의 본질은 노인의 고집이 아니라 급격한 핵가족화와 늘어난 수명에 비해 어떤 돌봄 대책도 준비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무책임함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고립되지 않으려는 할아버지의 고집스러운 노화와 속절없이 낯선 것들로 채워져 가는 아버지의 서글픈 노화, 이 모두는 비껴갈 수 없는 내 미래였다. 오래 산다는 것은 젊음이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도록 늙어간다는 의미이다. 죽는 것보다 늙는 것이 두려운 한국 사회가 선택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미디어는 현대인의 노화 불안에 편승해 항노화 식단과 건강식품들을 쉴 새 없이 노출하고, 에스엔에스(SNS)에는 젊어 보이기 위한 몸매와 피부 관리, 옷차림의 과시가 넘쳐난다.
그러나 나는 젊음이란 주름 없는 얼굴인지, 아니면 도전하는 패기인지 되묻고 싶다. 죽음에 대해 대화하게 된 이후 아버진 장로 대우에 연연치 않고 교회의 친교부장을 맡았다. 매달 한번씩 등산, 유적지 탐방, 야유회를 기획하고 교인들을 이끈다. 새로운 역할을 찾은 이후 더 이상 수면제도 먹지 않게 되었다. 에세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는 말한다. 어떻게 죽게 될지 알면 어떻게 살게 될지도 알게 된다고.



박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