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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작가가 인공지능 제미니(제미나이, Gemini)에 김화장(가명)씨가 바이어와 미팅하는 사진을 제공하고 “이 사진을 유화로 바꿔줘”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인물과 제품이 식별되지 않도록 재구성.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대한민국은 화장품 강국이다. 이 말이 소위 ‘국뽕’이 아님을 주식 시장이 말해준다. 반도체와 ‘면비디아’의 뒤를 이어 화장품 산업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만이 화장품 강국인 것은 아니다. 조선도, 고려도, 고구려·백제·신라도 모두 화장품 강국이었다. 일본의 옛 백과사전인 ‘화한 삼재도회’에는 백제가 화장 기술을 전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북송의 사신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도 고려 여인의 화장 스타일에 관한 언급이 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유행을 선도하는 소위 트렌드세터의 모습이 여실하다.
더 주목할 것은 신라의 화랑을 비롯하여 고려 및 조선의 선비들도 백분과 미묵으로 얼굴 꾸미기에 신경 썼을 뿐 아니라 향낭을 애용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선비는 예뻤다. 오늘날의 방탄소년단과 세븐틴, 스트레이 키즈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선 비의 얼굴을 엿볼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번에 그릴 ‘일하는 사람의 초상’은 이 아름다운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세무와 관련한 공신력 있는 표현으로 ‘화장품 제조 및 도소매 사업자’인 김화장(가명, 정사년생) 대표를 만나보았다.
김 대표가 경기도 동탄에 사무실을 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러나 몇 가지 소소한 이점이 이곳에 있을 이유를 만들었다. 먼저 수원의 집과 가깝다는 사실이다. 일하는 사람이면 안다. 업무는 어째 출근길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그리고 퇴근길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느낌. 출퇴근이 편해야 한다는 건 예전 직장 생활을 할 때부터 김 대표가 터득한 진리였다.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 사무실에 도착한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관련 업체나 바 이어와의 미팅 때문에 서울로 바로 출근할 때도 있다.
“출퇴근 문제 외에도 임대료가 비교적 싸고, 또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밖이라 법인세 감면 혜택도 있거든요. 예전에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쪽에 화장품 도소매 업체가 모여 있었다고 들었는데,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같은 업종끼리 모여 있을 이유가 작아졌죠. 대신 교통이 살짝 불편하니까, 직원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는 합니다. 어쩌면 이런 사정도 저렴한 임대료에 반영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저희도 돈 많이 벌면 강남에 사옥도 짓고 해야죠.”
화장품 사업을 시작한 지는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았으니, 이전에는 어떤 일을 했고, 또 어떤 계기로 업계에 뛰어들었는지 궁금해졌다.
“친구 따라 강남 간 케이스라고 해야 할까요? 사회 첫발을 디딘 곳은 모 대기업의 해외영업팀이었습니다. 전공이 중국어여서 중국, 대만을 포함한 아시아 쪽을 담당했었고요. 그러다 돈을 좀 빨리, 그리고 많이 벌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험 영업으로 전직했고, 그때 만난 동료가 먼저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 친구가 수출과 해외 관련 일을 도와주면 안 되겠냐고 해서 저도 화장품 업계로 들어온 것이죠. 일하다 보니까 제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창업도 했습니다. 화장품 사업은 젊고 아름답고 건강해 보이고픈 욕망을 파는 것이죠. 이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을 테니,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판단했고요.”
사업 얘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려 달라고 요청하자, 무슨 우여곡절인지 잠시 천장을 멍하니 보더니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잘 풀렸어요. 그때가 1차 케이(K)-뷰티 붐이라고도 말할 수 있거든요. 그 덕분에 오이엠(OEM)이긴 했지만, 베트남으로 수출도 했고, 이후에 독일 비건 화장품의 국내 총판이 되어 유통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1차 오더분이 통관을 끝내자마자 기가 막히게 코로나19 사태가 터져버리더라고요. 정말 청천벽력이었죠.”
그때의 충격이 떠올랐는지 테이블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 들이켰다. 사업이란 게 그렇다. 변덕스러운 날씨를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뱃사람의 운명과도 비슷하다. 농사도 기상이 중요하지만, 뱃일에 비할 바는 아니다. 직장 생활도 부침이 있지만, 사업에 비할 바는 아니다.
원래는 피부관리실 위주로 유통할 계획이었다. 코로나19는 심각해졌고, 계획도 다 무산되었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것이 온라인 판매다. 처음에는 네**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키워드 광고도 했다. 그 효과인지는 모르겠으나 판매가 늘어났다. 그다음에는 쿠* 입점이었다. 지금은 쿠* 쪽에서 연락이 와 로*배송 입점까지 하게 된 상태이다. 엔데믹 후, 피부관리실 영업망이 있는 회사와 국내 총판 계약을 맺었다. 유통은 그쪽의 도움을 받고 있고, 김 대표는 새로 만든 브랜드에 집중하고 있다.



김화장씨는 화장품에 관한 생각을 아날로그 노트에 옮겨 적는다. 그는 “노트가 벌써 몇권이나 채워졌지만, 여전히 기획의 첫 줄은 어렵다”고 말한다. 본인 제공


화장품이 호황이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아까 말한 ‘1차 붐’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1차 K-뷰티 붐은 중국이나 동남아를 중심으로 대기업이 주도해서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고요. 고풍스럽고 화려한 용기에 든 화장품을 떠올려 보시면 될 거예요. 판매도 중국의 ‘따이공’(다이궁.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물건을 대신 구입해 주는 보따리상)과 면세점이 대세였죠. 2차 붐은 현재 진행 중이고, 북미나 유럽 시장 등이 핵심이에요. 인디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고,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중요해졌고요.”
귀동냥으로 들은풍월이 있어서, 대한민국이 오이엠(OEM: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과 오디엠(ODM: 제조자 개발 생산) 강국이니까 사실상 난해한 일은 그쪽에 맡기고, 유통과 판매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더니, 말 속에 든 뼈를 김 대표가 골라내었다.
“우리나라 화장품이 전 세계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데에 한***, 코*** 등과 같은 기술력과 제조 능력이 뛰어난 오이엠, 오디엠 업체들이 많기 때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를 역으로 말하면, 화장품 시장의 진입장벽 자체가 낮아지고 있다는 의미거든요. 한국 화장품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경쟁이 격화되는 것이죠. 화장품 시장은 정말 레드(red)한 시장입니다.”
듣고 보니, 사업의 요체가 경쟁 우위를 달성하는 데 있다면,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에 기업의 역량이 집중되는 것이 옳겠다, 싶었다.
화장품 시장은 넓다. 분류 방법도 여러 가지다. 일반 화장품과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기능성 화장품으로 나눌 수도 있고, 화장 순서에 따라 기초 화장품과 색조 화장품으로도 나눌 수 있다. 아니면 적용 부위에 따라 헤어, 페이스, 보디로도 나누어도 되고, 사용자를 고려해서 유아용, 성인용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꽉 찬 듯 보이는 시장이지만, 이 시장에도 틈이 있다. 틈새에서 업계의 강자가 될 씨앗이 싹튼다. 화장품 관련 전공이 아닌 김 대표는 독일 화장품 회사의 국내 총판이 되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연구소에까지 가서 교육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화장품의 기본은 결국 보습, 세정, 자외선 차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사가 이번에 출시한 제품은 퍼퓸드 보디 크림(향이 진하게 남는 보디 크림)으로 보습 영역에 속해 있다. 여러 기업이 이 시장에 진입했지만, 다행히 아직은 절대 강자가 보이지 않는다.
의도하고 만든 제품은 아니다. 원래는 다른 제품 용도로 개발한 향료인데, 제조업체 쪽에서 개발한 향이 너무 아깝다고 해서 함께 고민하다 보디 크림으로 만들었다. 복잡하고 섬세한 향은 미학적이다. 하지만 딜레마이기도 하다. 소비자의 마음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 마음을 알려고 너무 머리를 싸매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진심 어린 시도를 작게 많이 해 보자!’ 현재 김 대표의 생각이다.
화장품 사업을 영위하면서 힘든 일은 무엇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장님이 얘기하는 것처럼 결국 ‘돈과 사람’이 제일 힘든 것일까? 역시 그랬다.
“자금과 인간관계죠.”
자금이라는 것은 매출을 의미하는 것인지 묻자, 고개를 끄덕이는 듯싶더니, 갸웃한다.
“매출도 당연히 신경이 쓰이죠. 하지만 자금조달이 가장 큰 스트레스예요. 자금조달 문제는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괴로움을 안겨줍니다. 신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하는 것도 돈이고, 사업을 확장하는 것도 돈이고, 패키지 디자인을 바꾸는 것도 돈이고, 아무튼 다 돈이니까요.”
자금조달이 스트레스라는 사실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간관계가 스트레스라는 것은 의외의 답이었다.
“화장품 업체라고 해서 인간관계가 더 힘든 것은 아니고요. 화장품 업체도 거래처가 여러 곳이고, 유통 과정에서 생기는 불만이 있으면 그것도 처리해야 하고, 대내적으로는 직원들과 생각이 어긋날 때도 있죠.”
돈과 사람이라는 스트레스 항원은 다른 곳으로 옮겨 가지 않을 것 같고, 그렇다면 항원에 반응하는 방식을 조절해야 할 터. 김 대표는 업황이 정말 안 좋았던 코로나19 시절에는 주로 집에서 반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런데 그 술이 또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과음 다음날에는 일이 손에 제대로 잡히지 않았고, 건강도 나빠져서 고생했다. 지금은 건전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운동, 독서, 영화 감상 같은 것들이다. 3년 전에 새벽 수영을 시작했다. 온·오프 독서 모임에도 참가한다. 독서 모임은 다양한 관점에서 오는 통찰력도 같이 얻게 되어 만족스럽다.
다행인 건 가족이 늘 응원해 준다는 점이다. 사업이 어려움을 겪을 당시, 만약 배우자와 자녀가 다른 일, 혹은 예전의 안정감 있던 일을 권했다면 크게 흔들렸을 것 같다. 일에 바쁘다 보니, 고마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해 늘 미안한 마음이다.
오늘은 점심과 오후에 약속이 있어 서울로 가야 한다. 점심은 왕십리에서 거래처 사람과 먹고, 선릉으로 이동해 바이어 미팅을 하고, 저녁에는 독서 모임에 참석할 예정이다. 오후 미팅 후 어중간하게 시간이 빈다. 그 빈틈에는 올***이나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 들러 작금의 트렌드를, ‘젊고 아름답고 건강해 보이고픈 욕망’을 직접 느껴볼 것이다.
*인터뷰이 요청으로 이름 등 일부 내용을 변경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소설가 최영

최영 l 월급사실주의 동인. 장편소설 ‘로메리고 주식회사’, 메타픽션 ‘춘야’ ‘작은 빛’, 공저 앤솔러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킬러 문항 킬러 킬러’ 등을 썼다. 수림문학상 수상.




최영 작가